지친 날에도 나를 붙잡아 주는, 아주 사소한 나의 의식들
삶의 리듬을 유지하는 건, 마치 텅 빈 그릇에 무언가를 가득 채우려고 애쓰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오히려 그 반대, 아주 미세하게 생겨난 '틈'을 지켜내는 행위에서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요즘 들어 자주 든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더 많이', '더 완벽하게'를 요구하고, 하루하루는 마치 쉴 틈 없이 돌아가는 거대한 톱니바퀴 속의 작은 부품이 된 기분이 들 때가 많다.
어느 날은 아침에 눈을 떴는데 온몸의 에너지가 이미 바닥을 쳤다는 느낌, 무슨 큰일을 하지 않았는데도 머릿속이 온갖 잡념들로 꽉 막혀버린 듯한 무기력함.
이런 날들이 반복되다 보면, 스스로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내가 정말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는 건지조차 헷갈릴 때가 있다.
마치 물속을 유영하는 것처럼, 몸은 움직이는데 정신만 자꾸 바닥으로 가라앉는 기분.
그럴 때 필요한 건 거창한 각오나 거대한 동기 부여가 아니라, 그냥 '나만이 아는 작은 습관' 같은 것들인 것 같다.
나에게 그런 최소한의 방어선 역할을 해주는 루틴들이 있다.
예를 들면, 퇴근하고 집에 오면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가장 좋아하는 찻주전자에 물을 올리는 그 과정 말이다.
물이 끓기 시작하는 소리, 찻잎이 물을 머금고 천천히 색을 내는 그 과정을 지켜보는 시간.
이 행위 자체는 어떠한 생산성으로도 이어지지 않는다.
그저 찻잔을 들고 앉아, 아무 생각 없이 찻물이 식어가는 과정을 지켜볼 뿐이다.
혹은 잠자리에 들기 전, 그날 하루 동안 내가 받은 스트레스나 짜증 같은 감정들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가상의 선을 긋는 의식 같은 것도 있다.
이런 루틴들은 일종의 심리적 경계선(Boundary)을 그어주는 것 같다.
"그래, 오늘 하루도 이렇게 무사히 지나갔구나.
이 찻잔 하나, 이 페이지 한 장이 오늘 나를 지탱해 준 작은 증거물이구나" 하고 스스로에게 조용히 속삭여주는 느낌.
이런 사소한 의식들이 모여서, 내가 완전히 휘둘리는 존재가 아니라, 나만의 작은 리듬을 가진 독립된 개체라는 느낌을 되찾게 해준다.
이 작은 '틈 지키기'가 사실은 나를 지키는 가장 강력한 생존 기술이 아닐까 싶다.
지친 날의 루틴은 무언가를 채우기 위함이 아니라, 나 자신만의 경계를 지키는 최소한의 생존 의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