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 일 목록'만 채우면 피곤한, 만성적인 영혼의 방전 상태에 대하여 요즘 들어 부쩍 자주 느끼는 건, 단순히 잠이 부족해서 오는 만성 피로 같은 게 아니더라고요.

    '할 일 목록'만 채우면 피곤한, 만성적인 영혼의 방전 상태에 대하여
    요즘 들어 부쩍 자주 느끼는 건, 단순히 잠이 부족해서 오는 만성 피로 같은 게 아니더라고요.

    마치 배터리가 닳은 건 아닌데, 전원이 꺼지기 직전의 그 미묘한 '먹통' 상태랄까요?
    아침에 눈을 뜨면 이미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이 머릿속을 맴돌고, 그 목록을 채워나가는 하루를 보내고 나면 몸은 피곤한데 정신은 묘하게 공허한 거예요.
    회사 동료들이나 학교 친구들이 "오늘 하루 어땠어?"라고 물을 때, 사실 가장 정확한 대답은 "그냥 흘러갔어요.

    뭘 했는지 기억도 희미해요." 같은 건데, 이런 감정을 털어놓을 곳이 마땅치 않잖아요.

    우리는 늘 '효율성'이라는 거대한 잣대에 자신을 대입시키고 살잖아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빡빡하게 짜인 스케줄, 이메일 하나 놓치는 것도 불안한 마음, 끊임없이 무언가를 '처리'해야 한다는 강박이 우리를 지치게 만들어요.
    마치 쉼표가 생명처럼 귀해진 시대에, 우리 스스로가 너무 열심히 '뭔가'를 채우느라 잠시 멈추는 법을 잊어버린 기분이랄까요.
    그래서 문득 '의식적인 멍때림'의 가치를 깨닫게 됐어요.

    이게 무슨 게냐고요?
    목적 없이 걷기,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기, 아무 생각 없이 좋아하는 노래를 반복해서 듣기 같은 것들요.
    처음엔 '이걸로 뭘 하겠다는 거지?' 싶어서 죄책감마저 들더라고요.

    시간 낭비 같고, 뭔가 생산적이지 않은 활동에 에너지를 쓰는 것 같아 오히려 불안했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런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허락하는 순간, 뇌가 비로소 안도하는 것 같아요.
    마치 복잡한 알고리즘을 돌리느라 과부하 걸린 컴퓨터가 잠시 재부팅되는 느낌?

    이럴 때 뇌는 비로소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 같은 배경 작업을 돌리면서, 내가 무의식적으로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정리하거나, 혹은 그저 그날의 감정들을 조용히 정리할 시간을 갖는 것 같아요.
    그 상태가 너무 평화롭고, 이 시간이 쌓이니까 다음 날 아침이 왠지 모르게 좀 더 가벼워지는 기분이 듭니다.

    결국 우리가 놓치고 있던 건, '쉬는 것'이라는 행위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에요.
    무언가를 성취하지 않아도,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않아도, 그저 그 순간의 감각과 흐름에 몸을 맡기는 그 자체로 이미 충분한 재충전이라는 걸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요즘은 일부러 퇴근 후 계획 없는 저녁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 중이에요.

    근처 공원을 목적 없이 한 바퀴 돌거나, 카페에 가서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대신 창문에 맺힌 물방울의 움직임만 좇아보기도 하거든요.

    이런 사소한 '무목적성'의 시간이, 오히려 가장 강력한 생산성 도구가 되어 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 너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잠시 벗어나도 괜찮다는 말을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어요.

    가장 효율적인 재충전은 목적을 상실하고 흘러가는 시간을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데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