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반도체 장비 시장의 흐름을 보면, 지정학적 리스크가 기술 개발의 가장 강력한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걸 명확히 체감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핵심 공정 장비의 공급망이 특정 국가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구조는 언제든 취약점으로 돌아올 수 있죠.
이 흐름 속에서 중국이 자체적인 반도체 제조 역량을 확보하기 위해 리소그래피 장비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단순히 '만들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큰 뉴스가 아니지만, 그 기술적 깊이와 상업적 활용 가능성을 뜯어보는 게 진짜 관전 포인트입니다.
현재 중국 측에서 추진하는 방향은 미국의 제재와 공급망 불안정성을 우회하는 것이 핵심 목표로 보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아르곤 플루오라이드 레이저를 사용하는 심자외선(DUV) 리소그래피 장비 개발에 집중하고 있죠.
예를 들어, 193nm 파장 대역에서 65nm 이하의 해상도와 8nm 미만의 오버레이 정확도를 목표로 하는 장비나, 248nm 파장을 이용한 장비 등이 그 예시입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기존의 상용화된 장비들 대비 상당한 진전이 이루어진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심지어 국내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 SMEE 같은 기업이 90nm 공정 기술을 구현하는 장비를 시연했다는 점은 분명한 기술적 이정표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지점이 있습니다.
'진전'과 '상용화된 최고 수준' 사이에는 아직 넘어야 할 벽이 너무 높다는 겁니다.
이 신규 장비들이 보여주는 수치적 성과는 분명 주목할 만하지만, 이 수치들이 실제 반도체 팹(Fab) 환경에서 얼마나 안정적이고 반복 가능한 결과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그 실질적인 '마찰'을 따져봐야 합니다.
문제는 결국 '기준점'의 차이에서 발생합니다.
우리가 업계의 진짜 벤치마크로 삼는 ASML이나 Nikon 같은 글로벌 선두 주자들이 제시하는 성능 지표와 비교했을 때, 현재 중국이 개발하고 있는 시스템들은 여전히 상당한 격차를 보인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예를 들어, 글로벌 리더들이 자랑하는 최신 DUV 장비들이 38nm 이하의 해상도와 1.3nm 수준의 오버레이 정확도를 구현하는 반면, 국내 개발 장비들은 그 수준에 도달하기까지는 아직 거리가 있다는 것이죠.
이 간극은 단순히 숫자의 차이로 끝나지 않습니다.
반도체 공정에서 해상도와 오버레이 정확도는 곧 수율(Yield)과 직결되는 생명줄과 같습니다.
아무리 좋은 장비를 들여와도, 미세한 오차나 반복 사용 시 발생하는 변동성이 크다면, 그 장비는 '화제성'만 가진 장비에 머물고, '습관적인 핵심 공정 장비'가 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이 기술 개발의 배경에는 미국의 수출 통제라는 거대한 외부 변수가 깔려있기 때문에, 장비의 완성도 외에도 부품 수급이나 소프트웨어 통합 같은 생태계 전반의 취약성이 함께 따라옵니다.
SMEE가 EUV 특허 출원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이것이 곧바로 글로벌 시장에서 통용되는 '대체재'가 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결국, 이 모든 노력은 '자립'이라는 목표를 향한 필사적인 과정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기술적 파편화와 성능 격차는 당분간 업계의 주요 관전 포인트가 될 것입니다.
핵심 기술의 자립화 시도는 분명한 흐름이지만, 글로벌 표준 대비 성능 격차와 생태계 완성도라는 현실적 마찰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