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 없는데도 하루가 눈 깜짝할 새에 사라져 버리는 기묘한 시간의 감각에 대하여
별일이 생기지 않는 날들이 가장 기묘하고, 동시에 가장 허무하게 시간이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아요.
마치 시계의 태엽이 제멋대로 돌아가는 것처럼, 하루가 마치 롤러코스터의 오르막과 내리막이 없는 평지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마치고, 회사에 도착해서 평소 하던 루틴대로 업무를 처리하고,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도 딱히 계획한 이벤트도 없고, 그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가 어느새 밤이 되어버린 거예요.
이게 정말 하루가 온전히 지나간 건지, 아니면 그냥 꿈속에서 몇 시간만 뚝 잘린 건지 헷갈릴 때가 많아요.
예전에는 주말이 오면 그 주가 길게 느껴지고, 뭔가 밀린 숙제라도 하듯이 하루를 꽉 채워야 할 것 같은 조급함이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채워야 한다'는 강박감마저 희미해지면서, 오히려 시간 자체가 너무나 텅 비어버린 느낌을 받거든요.
벽시계를 쳐다봐도 똑딱거리는 소리 외에 아무런 리듬감도 없고, 마치 주변의 모든 소음이 증발해버린 듯한, 그런 종류의 '고요한 공허함'이 저를 감싸요.
이런 공백의 시간 속에서 저는 문득, 우리가 무의식중에 '시간의 밀도'를 느끼고 사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뭔가 극적인 사건이 터지거나, 엄청난 몰입을 요구하는 활동을 할 때는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 버리잖아요?
그게 '즐거워서'가 아니라, 그만큼 정신적 에너지를 온전히 소진했기 때문에 그런 건가 싶기도 하고요.
예를 들어, 친구들과 만나서 밤새도록 깊은 대화를 나누거나, 아니면 정말 재미있는 책에 빠져서 몇 시간을 보내면, "어?
벌써 새벽 3시네?"라며 깜짝 놀라곤 하잖아요.
그 순간만큼은 시간이 나를 붙잡아 두는 느낌이 들어요.
하지만 별일 없이 흘러가는 날들은, 마치 제가 시간이라는 강물 위에 둥둥 떠 있는 작은 나뭇잎 같아서,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그냥 '흐름'에 몸을 맡기게 되는 거예요.
이쯤 되니, 저는 이 '무(無)의 시간'을 어떻게 다루는 게 가장 중요한 숙제가 된 것 같아요.
그냥 흘려보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이 텅 빈 시간 속에서 나 자신과 다시 대화할 수 있는 작은 '의미의 닻' 같은 걸 내려야 할 것 같은 막연한 불안감마저 느껴지네요.
시간이 빨리 간다는 건, 어쩌면 우리가 그만큼 많은 것을 '경험'하고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르겠다는 막연한 위로를 건네봅니다.
가장 공허하게 느껴지는 시간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채워야 할 내면의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는 순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