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만 번지르한 것들보다, 시간이 빚어낸 깊은 결이 좋다
요즘 들어 문득 이런 생각이 자주 들어요.
우리가 무언가를 바라보거나 경험할 때, 본능적으로 '새로움'이나 '완벽한 광택'에 매료되는 경향이 있잖아요.
최신 기술의 제품이나, 처음 영롱하게 빛나는 물건들 말이에요.
물론 그런 것들이 주는 설렘도 크고, 눈을 즐겁게 하는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곰곰이 생각할수록, 그 찰나의 반짝임 뒤에는 어딘가 모를 공허함 같은 게 남아있는 기분이 들어요.
마치 처음 만난 사람에게서 느끼는 강렬한 설렘 같기도 하고, 혹은 갓 개봉한 제품의 그 완벽한 포장지 같은 느낌이랄까요.
그건 일종의 '완벽하게 보존된 상태'의 미학일지 모르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 완벽함이라는 것이 오히려 덧없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요즘 일부러 '낡은 것들'에 시선을 두게 되더라고요.
예를 들어, 오래된 가죽 지갑이나,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나무 테이블 같은 거요.
새것은 너무 균일해서 오히려 인공적이라는 느낌을 주는데, 가죽 지갑의 모서리나 코팅이 벗겨진 부분, 아니면 나무의 결 사이사이에 박혀 있는 미세한 긁힘 자국 같은 것들이 있잖아요.
그 자국 하나하나가 이 지갑이나 테이블이 거쳐온 시간의 기록이잖아요.
누군가와 함께 커피를 마셨던 자국, 무거운 책을 받치느라 생긴 눌림 자국 같은 것들이요.
그런 '사용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을 때, 비로소 그 사물에 '깊이'라는 무형의 가치가 입혀지는 것 같아요.
그 깊이는 단순히 보기 좋은 정도를 넘어, 그 사물이 삶의 일부였음을 증명하는 일종의 영혼 같은 거랄까요.
이런 생각의 흐름이 물질적인 것에서 멈추지 않고, 제 주변의 관계나 경험에도 적용되더라고요.
예를 들어, 처음 만난 사람과의 대화가 너무 완벽하고 매끄러울 때가 있잖아요.
마치 잘 짜인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요.
그 순간은 정말 황홀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완벽함이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반면에, 몇 번이나 의견 충돌을 겪었고, 서로의 단점 때문에 애쓰고, 수많은 오해를 풀면서 여기까지 온 관계가 있잖아요.
그 관계의 '굴곡진 부분들'이 오히려 가장 단단하고 믿음직한 지지대가 되어주는 걸 느껴요.
그 과정에서 생긴 흠집이나,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애썼던 그 땀방울 같은 게 쌓여서 만들어진 견고함 말이에요.
결국 우리가 진정으로 가치 있다고 느끼는 것들은, 처음부터 반짝이며 완성된 것이 아니라, 수많은 마찰과 시간이 빚어낸 '흔적'들로 채워져 있는 건 아닌가 싶어요.
마치 오래된 LP판을 들을 때, 아주 미세하게 튀는 잡음(노이즈)마저도 그 음반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는 증거처럼 말이에요.
그 잡음이 없다면, 우리는 그 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할 테니까요.
그래서 요즘은 무언가를 판단할 때, '가장 완벽한 모습'보다는 '가장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모습'에 더 귀 기울이게 되는 요즘입니다.
진정한 가치는 처음의 광택이 아니라, 시간을 거치며 새겨진 사용의 깊이와 흔적 속에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