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 없는데도 하루가 금방 가버리는 시간의 질감에 대하여
요즘 들어 문득 이런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특별히 거대한 사건이 터지지도 않고, 인생을 바꿀 만한 결정적인 순간도 없는데, 시간이 마치 쏜살같이 지나가 버리는 기분 말입니다.
마치 누군가 나 몰래 시계의 태엽을 휙 감아버린 것 같아요.
아침에 눈을 뜨고 '오늘은 이걸 해야 하는데', '이 프로젝트는 저렇게 마무리해야 하는데' 하는 수많은 의무감과 해야 할 일들의 리스트에 정신을 빼앗기다 보면, 어느새 저녁 햇살이 창가에 길게 드리워져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돌아보면 하루가 순식간에 증발해버린 기분이라, 오히려 무언가를 '채우지 못한' 공허함 같은 게 남아요.
우리는 늘 바쁘게 움직여야만 무언가를 성취했다고 느끼는 사회에 살고 있잖아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이 '비어있는 시간'을 메우려고 애씁니다.
SNS를 무의미하게 스크롤하거나, 의미를 찾기 위해 억지로 책을 펼치거나, 혹은 남들이 추천하는 '자기계발 루틴' 같은 것들로 시간을 빡빡하게 채워 넣으려고 안간힘을 쓰기도 하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모든 활동들이 끝나고 나면, 오히려 더 큰 공백이 느껴지는 역설적인 경험을 합니다.
마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다른 공허함을 빌려온 것 같은 기분이랄까요.
결국 깨닫게 된 건, 이 '비어있는 시간' 자체를 관찰하는 행위가, 어떤 무언가를 추가하는 행위보다 훨씬 더 밀도 높은 경험이라는 겁니다.
저는 이제 의도적으로 멍 때리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해요.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거나, 커피를 마시면서 그저 컵의 온기나 주변의 소음들을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그럴 때 비로소 비어있는 시간의 '질감'이 느껴지거든요.
그 질감은 마치 아주 부드러운 벨벳 같기도 하고, 혹은 아침 이슬처럼 투명하기도 합니다.
이 시간들은 어떤 목적성이나 효율성이라는 잣대로 측정될 수 없는, 나 자신과 가장 솔직하게 마주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 같아요.
어쩌면 우리가 그토록 채우려 애쓰는 '성공'이나 '바쁨'이라는 것들은, 사실 이 고요하고 비어있는 순간들을 잠시 잊게 해주기 위한 일종의 장치였을지도 모릅니다.
그 공백 속에서만 비로소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에너지가 무엇인지를 아주 조용히 속삭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 침묵 속에서 나는 내가 가장 나다워지는 기묘한 경험을 하곤 합니다.
가장 가치 있는 시간은 무언가를 채우는 순간이 아니라, 비어있음을 온전히 느끼며 관찰할 때 찾아온다.
** 억지로 채우려 애쓰기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 '비어있음'의 순간에 귀 기울이는 것이 나 자신을 만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