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산성 앱을 여러 개 써보다가 느낀 피로와 정착 기준

    완벽한 시스템을 찾으려다 지쳐버린 나에게, '느슨함'을 허락하는 법에 대하여

    요즘 들어 부쩍 '최적화'라는 단어에 대한 피로감을 느낍니다.

    저만 그런 건가 싶어 주변 사람들의 디지털 플래너나 업무 시스템을 보면, 마치 고대 건축물처럼 정교하게 설계된 아카이브들이 눈에 들어오거든요.

    저도 처음에는 그랬어요.
    뭔가 '완벽한 나만의 시스템'이 존재할 거라고 믿었죠.

    그래서 여기저기서 나온 생산성 앱들을 다운로드 받기 시작했습니다.
    노션(Notion)의 무한한 페이지 구조를 탐험하고, 옵시디언(Obsidian)의 연결 고리(Graph View)를 따라가며, 할 일 목록(To-Do List) 앱들은 그 어떤 태스크 관리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치밀하게 정리해 나갔습니다.

    '이거면 진짜 나만의 지식 관리 시스템이 완성되겠지', '이 플로우차트를 거치면 업무 효율이 300%는 오를 거야' 같은 자기 최면을 걸곤 했죠.
    처음에는 그 과정 자체가 엄청난 지적 유희 같았어요.
    내가 얼마나 체계적이고, 얼마나 많은 정보를 휘어잡을 수 있는 사람인지 스스로 증명하는 과정 같기도 했고요.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너무 많은 앱을 동시에 켜놓고, 이 데이터베이스와 저 데이터베이스의 연결고리를 일일이 검토하고, 오늘 할 일에 맞춰 분류하고, 태그를 붙이는 과정 자체가 또 하나의 거대한 '업무'가 되어버린 겁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생산성을 높이려는 노력이, 그 자체로 가장 큰 생산성 저해 요인이 되어버린 거예요.
    이 복잡한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쓰는 정신적 에너지가, 애초에 그 시스템으로 해결하려던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쓰는 에너지를 다 빨아먹는 느낌?
    정말 지치더라고요.
    결국 저는 한계에 다다랐고, 어느 날 문득 멈추게 되었습니다.

    '이게 과연 나에게 필요한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었죠.
    그러다 깨달은 건, 완벽하게 설계된 시스템이란 게 사실은 '나'라는 불규칙하고 감정적인 존재를 담아내기에는 너무 딱딱하고 경직되어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마치 너무 빡빡하게 짜인 스케줄표 같은 거예요.

    약간의 여백, 예측 불가능성, 그리고 '일단 해보자'는 정도의 느슨함이 오히려 가장 큰 동력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일부러 일부러 시스템을 엉망으로 만들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중요한 아이디어는 노트 한 구석에 휘갈겨 적고, 복잡한 태그는 아예 포기해버렸어요.
    메모장에 쓰인 단어들은 논리적 연결고리 같은 건 없지만, 그 순간의 감정이나 떠오른 이미지를 그대로 담고 있거든요.

    어쩌면 우리의 뇌는 그렇게 완벽한 정리본을 원해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경험을 붙잡고 싶어서 더 많은 기록을 요구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너무 많은 툴을 다루느라 뇌가 과부하 걸린 게 아닐까요?
    결국 가장 효율적인 상태란, 가장 적은 장치와 가장 적은 규칙으로 돌아가는, 일종의 '의식적인 게으름' 상태가 아닐까 싶습니다.

    최적화의 끝은 완벽함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적절한 '쉼표'를 찾는 데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