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빠른 시대에, 오히려 '느림'과 '손맛'이 그리워진 요즘의 기기 취향 변화에 대하여
요즘 들어 제 주변기기 선택의 기준이 꽤 많이 바뀌었다는 걸 스스로 느끼곤 해요.
몇 년 전만 해도 '최신 사양', '가장 뛰어난 기능', '미래지향적인 디자인' 같은 키워드에 완전히 매료되어, 무조건 가장 최첨단이라는 제품을 쫓아다녔거든요.
막 새로운 AI 기능이 탑재된 스피커가 나오면 '와, 이 정도는 돼야지!'라며 지갑을 열 준비가 되어 있었죠.
문제는 그 '무한한 확장'의 끝이 없다는 거예요.
매달 새로운 연결 방식, 새로운 인터페이스, 더 빠르고 더 많은 기능을 요구하는 것처럼 느껴지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뭘 사야 할지, 뭘 포기해야 할지 감당하기 어려워지더라고요.
마치 끝없이 이어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방향 감각을 잃은 기분이랄까요.
스마트폰 화면을 켜고 하루 종일 정보의 파도에 몸을 맡기고 살다 보니, 제 뇌가 스스로 일종의 '과부하 경고'를 보내는 것 같았어요.
너무 완벽하고, 너무 즉각적이고, 너무 매끄러운 디지털 경험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깨달으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오히려 그 '불완전함'에서 오는 안정감을 찾아 헤매게 된 거죠.
이런 심리적 피로감이 구체적인 물건들로 발현된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음악 감상을 할 때도 그랬고요.
스트리밍 서비스가 제공하는 수백만 곡의 완벽하게 선별된 플레이리스트는 편리하지만, 가끔은 턴테이블에서 플래터가 돌아가면서 '지지직'거리는 잡음이 섞여 나올 때, 그 미세한 노이즈가 오히려 음악에 깊이와 생동감을 더하는 것처럼 느껴지더라고요.
디지털의 완벽한 무결성(Flawlessness)이 주는 건 일종의 공허함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요즘은 차라리 잉크가 번지거나, 펜촉이 종이에 긁히는 그 '저항감'이 있는 물건들에 마음이 끌려요.
만년필을 잡고 글씨를 쓸 때 느껴지는 묵직한 무게감, 펜촉이 종이 섬유 사이를 지나가며 만들어내는 미세한 마찰음 같은 것들 말이에요.
이런 물리적이고 아날로그적인 '질감'들은요, 시간을 멈추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게 만드는 일종의 의식(Ritual) 같은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기술이 우리에게 '속도'를 강요할수록, 우리는 역설적으로 그 속도를 늦추고,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천천히 음미할 수 있는 느린 경험에 더 큰 가치를 두게 된 건 아닐까요?
결국 요즘 제가 원하는 건, 기술이 제공하는 '궁극의 편리함'보다는, 인간의 손길과 시간의 흐름이 녹아있는, 약간의 '불완전한 따뜻함' 같은 것들인 것 같아요.
기술의 발전이 극에 달할수록, 인간은 의도적으로 '느리고 만질 수 있는' 아날로그적 경험에서 심리적 안정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