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정리하다 문득 깨달은, 물건의 진짜 가치에 대하여
요즘 들어 부쩍 책상 정리에 시간을 많이 쏟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건 미니멀리즘이라는 거창한 트렌드를 따라가려고 애쓰기 위함도 있었지만, 어느 정도 지나고 나니 나 스스로의 ‘사물과의 관계’를 돌아보게 된 기분이다.
늘 무심히 지나치던 전선 뭉치, 여기저기 널려 있던 충전 케이블들, 심지어 펜꽂이 하나까지도 제자리를 찾아 정리하고 나니, 묘한 해방감이 온몸을 감싼다.
처음엔 그저 ‘기능적으로 보기 좋게’ 만드는 것에만 초점을 맞췄다.
이 선은 저기에 숨기고, 이 거치대는 저 높이에 두는 식의, 오직 ‘효율성’이라는 칼날로 모든 것을 재단하려 했다.
하지만 어느 지점부터인가, ‘효율성’이라는 단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나를 붙잡았다.
그것은 단순히 물건이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는 안도감 이상의 것이었다.
마치 물건들이 서로에게 속삭이는 듯한, 아주 조용하고 규칙적인 리듬 같은 것이었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그냥 'USB-C 케이블'이라는 기능 단위로만 인식했던 것들이, 이번에 같은 재질의 다른 브랜드 제품과 나란히 놓이자 묘하게 질감의 차이, 혹은 케이블이 꺾이는 각도에서 오는 미세한 저항감 같은, 시각을 넘어선 촉각적 감각에 민감해지게 된 것이다.
사물의 기능적 만족을 넘어서, 그것이 손에 닿을 때 주는 무게감, 마우스를 움직일 때 나는 ‘사각’거리는 소리의 톤, 뚜껑을 닫을 때 느껴지는 ‘찰칵’거리는 정교한 결합감 같은 것들이, 어느새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사용 매뉴얼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이런 과정들을 거치다 보니,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최신 기술’이나 ‘최고의 스펙’ 같은 거대한 기능적 스펙에만 매몰되어 있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마치 모든 전자기기나 문구류가, 마치 고성능 엔진을 달고 태어난 것처럼, 가장 강력하고 눈에 띄는 성능을 낼 때만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래서 책상 위의 모든 물건을 '최적화'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정리는 오히려 '최소화'를 통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었다.
그건 바로 사물들이 가진 '존재감'에 대한 재발견이었다.
예를 들어, 어떤 펜은 아무리 비싸고 기능이 뛰어나도, 만져봤을 때 금속의 차가움이나 잉크가 번지는 방식이 너무 투박하면, 오히려 그 옆에 놓인 저렴하지만 묵직한 나무 재질의 펜이 주는 '시간의 흔적' 같은 고요한 감각에 압도당하게 된다.
이처럼 사물이 우리에게 보내는 미세한 신호들, 즉 그 물건의 재질이 주는 온도감, 사용했을 때의 리듬감, 혹은 그 물건을 바라볼 때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정돈된 평온함 같은 것들이야말로, 기술이나 기능이라는 거대한 설명표로는 절대 포착할 수 없는, 가장 섬세하고 사려 깊은 사용의 영역이 아닐까 싶다.
이제는 어떤 물건을 구매하기 전에, '이것이 나에게 어떤 감각을 줄까?'라는 질문을 먼저 던지게 되었다.
물건의 가치는 그것이 얼마나 많은 기능을 수행하느냐보다, 손에 닿았을 때 어떤 고요한 감각을 되돌려주느냐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