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 없는데도 하루가 금방 가는 시기에 드는 생각, 그 시간의 밀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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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부쩍 그런 날들이 많아진 것 같아요.
특별히 무언가 큰 사건이 터지지도 않고, 거창한 약속이나 기다려온 이벤트 같은 것도 없는데, 그냥 하루가 그렇게 흘러가 버리는 날들이요.
처음에는 그 시간의 흐름이 너무 느리다고 느껴져요.
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고,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시간이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느껴지잖아요.
이게 뭘까 싶었거든요.
뭔가 외부에서 강력한 '자극'이 들어와서 시간을 채워주길 바라는 건지, 아니면 그 자극 자체가 우리에게 시간의 속도를 통제하는 착각을 심어주는 건지.
그저 평범하게 밍밍하게 흘러가는 시간은, 마치 텅 빈 캔버스 같아요.
무엇이든 채워 넣을 여백이 무한하게 존재하는 느낌인데, 동시에 그 무한함 때문에 오히려 뭘 해야 할지 막막해지고 공허함만 남는 기분이랄까요.
이런 '무(無)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이상하게도 다음 날을 기다리는 마음이 커져요.
마치 배터리가 방전된 전자기기가 다시 충전되기를 기다리는 것처럼요.
자극이 없으면 우리의 의식은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고, 가장 사소한 루틴이나 반복되는 생각들에 매달리게 되는 것 같아요.
어제 뭘 했는지, 오늘 점심은 뭘 먹을지 같은 아주 하찮은 것들이 갑자기 엄청나게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죠.
그게 이 시간적 공백이 만들어내는 일종의 '에너지 결핍' 같은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그래서인지, 친구들이 "요즘 뭐해?"라고 물어보면, '그냥 보내고 살아요'라는 대답이 너무나도 무기력하게 들리는 건지, 아니면 정말로 그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보내는 시간이 주는 특유의 몽롱함 때문인지, 가끔은 저 스스로도 저의 시간 감각을 믿기 어려울 때가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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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텅 빈 시간 속에서 문득 찾아오는 사색들은 꽤 깊이가 있더라고요.
평소 같으면 흘려보냈을 감정의 조각들이 갑자기 주워지고, 그때 지나쳤던 사람들의 목소리나, 예전에 읽었던 책의 구절들이 마치 타이밍이 맞춰 돌아온 것처럼 머릿속을 맴돌아요.
그건 아마도 외부의 소음이나 스케줄 같은 것들로 인해 우리가 '진짜 나'의 내면을 들여다볼 기회를 박탈당했기 때문 아닐까 싶어요.
마치 끊임없이 알림음과 업무 지시 같은 외부의 소음으로 귓가를 가득 메우고 살다가, 갑자기 모든 것이 멈춘 순간, 귀가 열리면서 비로소 내면의 미세한 소리들을 듣게 되는 느낌이랄까요.
결국 이 '시간의 공백'이라는 건, 사실 우리에게 주는 일종의 강제적인 '정지 신호' 같은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요.
바쁘게 돌아가는 삶의 속도에 너무 익숙해져서, 잠시 멈춰 서서 '나'라는 존재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점검할 기회 자체가 사라져버린 거죠.
그래서일까요.
별일 없는 날의 나른함 속에서, 오히려 가장 생생한 자아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저 흘려보내는 시간이 아니라, 나를 재정비하는 필수적인 '숨 고르기' 시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지기도 합니다.
별일 없는 하루의 공백은 시간의 결핍이라기보다,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가장 밀도 높은 사색의 기회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