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2시의 권태, 그게 시스템 고장이라기엔 너무 섬세한 느낌이다
오후의 권태라는 걸 겪어본 사람이라면, 그게 단순히 잠이 오거나 에너지가 방전되었다는 단순한 신체적 피로와는 결이 다름을 본능적으로 안다.
마치 배터리가 닳아서 꺼지는 느낌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감각의 민감도가 기묘하게 증폭되어 일시적으로 과부하된 느낌에 가깝다.
주변의 모든 소리가 갑자기 너무 크게 들리고, 형광등의 미세한 '웅-'하는 낮은 진동음까지 신경을 긁는다.
옆자리 동료가 키보드를 치는 '타닥거리는' 소리 하나하나가 리듬을 타고 나를 자극하는 것 같고, 심지어 창밖에서 지나가는 자동차의 엔진음마저도 '왜 저렇게 규칙적인가?'라며 분석하게 만든다.
이 상태가 제일 짜증난다.
왜냐하면 이 피로감은 '쉬어야 한다'는 명쾌한 신호가 아니거든.
오히려 너무 많은 것을 너무 세밀하게 인지하고 있다는 증거 같아서, 이 상태가 오히려 더 정신을 피곤하게 만든다.
마치 세상이 저음질로 작동하는 것처럼 느껴지면서도, 동시에 모든 디테일을 너무 선명하게 포착하고 있는, 일종의 감각적 과민반응 상태랄까.
이런 모호한 피로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과도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쉴 틈 없이 정보를 처리하도록 훈련되어 있고, 뇌는 그 틈을 놓치지 않는다.
회의 시간에 아무도 진지하게 듣고 있지 않은 '업계 동향'이라는 단어들이 반복될 때, 내 뇌는 그 단어들을 하나하나 뜯어보며 '그래서 이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그 질문을 던지는 행위 자체가 에너지를 소모시키고, 그 소모된 에너지를 메우기 위해 애쓰는 과정 자체가 또 다른 종류의 피로를 만들어내는 악순환에 빠지는 느낌이다.
점심을 먹고 나면, 사람들은 다들 '커피 한 잔 마시고 오겠다'는 말로 이 묘한 경계선을 넘으려 하는데, 그 커피 한 잔마저도 '각성제'라는 딱지표를 붙여야만 그 무력한 오후를 버틸 수 있는 현대인들의 자화상 같아서 씁쓸하다.
결국 이 오후의 권태는, 단순히 몸이 지쳤다기보다, 나 자신이라는 복잡한 시스템이 너무 많은 자극과 의미 부여의 요구 사이에서 잠시 멈춰 서서 '나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라고 질문을 던지는, 아주 섬세하고 사적인 일시 정지 버튼 같은 건지도 모르겠다.
Takeaway: 오후의 권태는 시스템의 정지 신호라기보다, 과부하된 감각을 스스로 점검하는 고차원적인 인지적 과부하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