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별일 없는데도 하루가 쏜살같이 지나가 버리는 기묘한 시간의 속도에 대하여 시간이라는 게 참 이상한 존재잖아요.

    별일 없는데도 하루가 쏜살같이 지나가 버리는 기묘한 시간의 속도에 대하여
    시간이라는 게 참 이상한 존재잖아요.

    뭔가 큰 사건이 터지거나, 무언가를 열심히 계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이 있어야만 그 시간이 제법 무게감 있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그런데 막상 별일 없이, 그저 ‘일상’이라는 이름으로 흘러가는 시간들은 마치 끈적한 고무줄 같아요.
    아침에 눈을 뜨고 출근 준비를 끝내고, 회사에 도착해서 자리에 앉는 그 순간부터 퇴근할 때까지, 그 시간의 흐름은 마치 속도를 늦추고, 모든 소리를 먹어치우는 것처럼 느껴지잖아요.
    창밖을 보는데, 구름이 움직이는 속도보다 제 마음속의 시계 초침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그저 커피를 마시거나,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그런 ‘틈’의 시간들이요.

    이 틈의 시간들은 외부적인 자극이 제로에 가까워서 오히려 시간의 개념 자체가 모호해지더라고요.
    마치 시간이란 게 우리에게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드는 일종의 시스템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이 시스템은 우리가 흥분하거나, 놀라거나, 혹은 깊이 몰입하는 순간에 가장 효율적으로 돌아가고, 그저 무념무상하게 흘러가는 순간에는 그 동력이 약해지면서도 멈추지 않고 계속 작동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인지, ‘별일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이렇게나 빠르게 지나가 버리는 건지, 아니면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그 시간을 너무 많이 ‘소모’하고 있는 건지, 가끔은 저 스스로의 시간 관리가 안 되는 것 같아 묘한 공허함마저 느껴지곤 합니다.
    이런 현상을 생각하다 보니, 시간이란 게 사실 우리가 ‘경험’이라는 리소스로 채워지는 것과 맞닿아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돼요.

    우리는 보통 재미있거나, 스트레스 받거나, 혹은 무언가를 성취했을 때를 가장 ‘기억’하잖아요.
    그래서 그 순간들이 시간의 밀도 자체를 높이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반대로, 아무 생각 없이 흘러간 주말 오후나, 특별한 이벤트 없이 지나간 평일 저녁 같은 시간들은, 마치 묽은 물처럼 희석되어 버리는 기분이 들어요.
    그 시간들은 그냥 흘러간 ‘양’으로만 남고, 그 안에 어떤 ‘질감’이나 ‘색깔’을 입히지 못하는 거죠.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시간을 늦추려고 애쓰기보다는, 그 순간에 내가 온전히 ‘존재’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건 아닐까.
    그저 흘러가는 것에 저항하기보다, 이 지루하고 평범한 순간 자체를 하나의 작은 전시물처럼 자세히 관찰해 보는 연습이 필요할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오늘 마신 커피의 향을 아주 천천히 맡아보거나, 창문에 비치는 빛의 각도가 어떻게 바뀌는지 몇 분 동안만 집중해서 지켜보는 식의 사소한 ‘의식(Ritual)’ 같은 걸 말이에요.
    이렇게 사소한 행위들이 쌓이다 보면, 그저 ‘지나갔다’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내가 이 순간을 이렇게 채웠다’는 구체적인 감각들로 기록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쩌면 우리는 시간을 잃는 게 아니라, 그저 ‘의식적으로 채우지 못하는’ 무의미한 순간들을 너무 많이 보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간의 흐름은 외부의 사건 유무와 상관없이 일정한 속도로 우리의 집중력과 감각적 리소스를 소진시킨다.

    시간이란 거대한 강물 같아서, 멈출 수는 없지만 그 흐름 속에서 나만의 작은 '색깔'을 담아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