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별일 없는데도 하루가 금방 가는 시기에 드는 생각

    별일 없는데도 하루가 금방 지나가는 기묘한 시간의 속도에 대하여
    요즘 들어 문득 이런 생각이 자주 든다.

    마치 시간이 나를 가지고 장난치는 것 같다.
    특별히 큰 사건도 없고, 거창한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날도 아닌데, 어느새 아침에 찌뿌둥하게 눈을 뜨고 멍하니 보내던 시간이 저녁만 되면 쏜살같이 사라져 버린 기분이랄까.

    어제 뭘 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을 때가 많다.
    아침에 일어나서 커피 포트를 켜고, 설거지를 하고, 책상 앞에 앉아 무의미한 웹 서핑을 하다가...
    그렇게 하루를 뚝딱 보내고 나면, 마치 며칠 밤을 새운 것처럼 피곤한데, 돌아보면 하루 전체가 마치 3시간짜리 짧은 영상처럼 느껴진다.
    가장 시간을 느리게 보내는 순간은 역설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볼 때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많은 것들을 '처리'하고 지나쳐 버린 후에 찾아오는 공허함 속에서 오는 것 같다.

    이 공허함이 시간을 '빨리' 가게 만드는 원동력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채워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면서, 그 채우는 행위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저 시간의 빈 공간을 메우는 임시방편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그저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마치 끈적한 시럽처럼 늘어지기를 바라지만, 그 바람이 오히려 더 큰 실망감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쩌면 우리가 시간을 늦추려고 애쓰는 그 행위 자체가 시간의 속도를 늦추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시간을 늦추는 기술' 같은 것이 존재하기는커녕, 우리가 놓치고 있는 건 '순간의 밀도'라는 개념이 아닐까 싶다.
    밀도라는 단어가 낯설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는 '집중도'와 '감각의 깊이'에 가깝다.

    커피를 마실 때도, 그저 목을 축이는 행위로 여기지 않고, 원두를 갈 때 나는 미세한 향의 변화부터, 첫 모금을 마셨을 때 혀에 감도는 쌉싸름함의 온도까지, 그 모든 감각을 의식적으로 '관찰'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다.
    혹은 친구와 대화할 때도, 다음에 내가 할 말이나 내가 처리해야 할 할 일 목록을 미리 생각하기보다, 상대방의 목소리 톤의 아주 미세한 떨림이나, 무의식적으로 손짓하는 제스처 하나하나에 온전히 마음을 기울여보는 연습 같은 것이다.
    이렇게 순간순간을 마치 잘 만들어진 스케치북의 한 페이지처럼, 디테일하게 기록하려 노력하는 시간이 쌓이면, 그 하루 전체가 얇고 휘발성 강한 막이 아니라, 층층이 쌓인 입체적인 경험의 조각들로 채워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 '채워짐'의 감각이,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단단한 잔상을 남기는 것 같다.
    시간의 속도를 늦추려 애쓰기보다,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감각으로 채우는 것이 진정한 시간의 여유를 가져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