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친구들이랑 얘기하다 느낀 건데, '이건 당연히 알겠지?'라는 말의 위험성 요즘 들어 주변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면, 묘하게 '우리만 아는 공통의 암묵적 규칙' 같은 게 있나 싶을 때가 많아

    요즘 친구들이랑 얘기하다 느낀 건데, '이건 당연히 알겠지?'라는 말의 위험성
    요즘 들어 주변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면, 묘하게 '우리만 아는 공통의 암묵적 규칙' 같은 게 있나 싶을 때가 많아요.

    예를 들어, 친구들끼리 주말에 약속 잡을 때잖아요?
    다들 너무 바쁜 와중에 "시간 되면 보자"라는 말만 남기고, 결국 모두가 각자의 스케줄을 최우선으로 두면서도, 마치 '언젠가는 다 같이 만날 거야'라는 막연한 기대감만 공유하는 느낌이랄까요.
    처음에는 이게 그저 청춘들의 로맨틱한 불확실성쯤으로 넘기곤 했어요.

    '그래, 우리 나중에 좋은 날에 보자'라는 낭만적인 여운으로 받아들이는 거죠.
    그런데 이게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그래서 언제야?'라는 현실적인 질문 앞에서 다들 애매한 웃음만 짓게 되더라고요.

    저는 이 지점에서 문득 '우리, 혹시 기대치에 대한 합의 자체가 안 된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단순히 스케줄 문제가 아니라, 이 관계에서 서로가 기대하는 '최소한의 노력'이나 '다음 단계'에 대한 정의가 불분명하다는 느낌이 저를 가장 많이 지치게 만들었어요.

    특히 직장 동료들과의 협업에서도 비슷한 패턴을 발견했어요.
    A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저는 상대방이 이 부분은 이미 어느 정도 사전 조사가 되어 있을 거라고 무의식적으로 기대했거든요.
    그래서 제가 기본적인 자료 정리나 배경 설명까지 싹 다 해주기 전에, 이미 그들은 '이건 당연히 알아야 하는 내용'이라고 생각하고 핵심만 건너뛰어 이야기하는 거예요.

    문제는 그 '당연함'의 기준이 사람마다 너무 다르다는 거예요.
    저에게는 당연한 배경 설명이 누군가에게는 너무 방대한 정보 과부하일 수 있고, 반대로 상대방에게는 당연한 기본 지식이 나에게는 치명적인 정보의 공백일 수 있는 거죠.
    결국 이렇게 '나만 아는 기준'으로 대화가 진행되다 보면, 누가 누구에게 얼마나 많은 에너지와 설명을 제공해야 하는지에 대한 비공식적인 계약서가 없이 휘둘리는 느낌을 받게 돼요.

    그 과정에서 가장 많이 소모되는 건, '내가 지금 뭘 기대해야 하는 거지?'라는 혼란과 그로 인한 감정적 피로감인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은 의식적으로 대화의 초반에 "지금 우리 논의의 목표가 A인지, 아니면 B인지요?" 혹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먼저 자료를 좀 더 보강해서 공유해 드릴까요, 아니면 이 부분은 이미 알고 계신 걸까요?" 같은 질문을 던지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처음엔 괜히 제가 너무 깐깐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막상 이렇게 명확하게 '기대치'라는 단어를 꺼내 놓고 합의를 시도하니, 주변 사람들도 오히려 신기하다는 듯이 귀 기울여 주더라고요.

    마치 그동안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흘려보냈던 '규칙' 같은 것을 처음 발견한 느낌이랄까요?
    이 작은 명확화 과정 하나가, 막연했던 관계의 모호한 긴장감을 싹 풀어버리는 것 같아 생각보다 큰 '생산성'을 가져다주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관계에서 느끼는 피로는 종종 '암묵적으로 기대하는 것'과 '명확히 합의된 것' 사이의 간극에서 온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피로감의 상당 부분은, 서로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기대치에 대한 명시적 합의가 부재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