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별일 없는데도 하루가 쏜살같이 지나가 버린 오후의 공허함에 대하여 시간이라는 건 참 신기한 것 같아요. 특별한 사건이 터지거나, 엄청나게 재미있는 일이 생기지 않아도, 그저 하루가 흘러

    별일 없는데도 하루가 쏜살같이 지나가 버린 오후의 공허함에 대하여
    시간이라는 건 참 신기한 것 같아요.
    특별한 사건이 터지거나, 엄청나게 재미있는 일이 생기지 않아도, 그저 하루가 흘러가 버린다는 느낌.

    마치 누군가 나 몰래 시계 태엽을 감아놓은 것처럼, 하루의 시간이 뚝 떨어져 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요즘 들어 이런 '무미건조한 시간의 흐름'에 대해 문득 깊이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특히 출퇴근길 지하철에 몸을 맡기고 멍하니 창밖만 바라볼 때, 혹은 아침에 일어나서 습관처럼 커피를 내리고 그 루틴을 반복할 때가 가장 심해요.
    눈을 뜨고, 밥을 먹고, 회사에 가서 정해진 업무를 처리하고, 또 집에 와서 같은 패턴의 저녁 시간을 보내는 것.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너무나 당연하고 예측 가능하기 때문에, 뇌가 일종의 '자동 조종 모드(Autopilot)'로 전환되는 것 같아요.
    마치 영화를 보듯 모든 순간을 의식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니, 그 시간의 밀도가 훅 떨어져 버리는 느낌이랄까요?
    그러다 문득 거울을 봤을 때, 어제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뭔가 '내가 어제보다 조금 덜 나를 경험한 것 같은' 묘한 기시감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이 루틴의 연속 속에서는 '지금 이 순간'을 붙잡아 둘 만한 강력한 앵커가 없으니까요.

    그저 다음 스케줄로 넘어가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기계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이런 무의식적인 흐름 속에서, 역설적으로 가장 '시간이 느리게 가는 순간'을 발견하게 되더라고요.

    그건 거창한 명상이나 여행 같은 것만이 아니에요.
    오히려 아주 사소하고 의도적인 '멈춤'의 순간들에서 오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친구와 만나서 아무 주제 없이 그저 서로의 얼굴을 응시하며 10분 정도 아무 말 없이 앉아있을 때 같은 경우예요.

    대화의 내용이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그 침묵의 밀도예요.
    서로의 숨소리, 주변의 낮은 소음, 심지어 나뭇잎이 바닥에 떨어지는 미세한 소리까지도 온전히 받아들이게 되면서, 시간의 톱니바퀴가 잠시 멈춘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죠.

    이런 경험을 하다 보면, 우리가 시간을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느냐'로 측정하는 습관 자체가 얼마나 허술한 기준이었는지 깨닫게 돼요.
    사실 시간은 '채워진 양'이 아니라, '집중의 깊이'로 측정되는 건 아닐까요?

    그래서 요즘은 일부러 '비생산적인 활동'을 일부러 스케줄에 넣으려고 노력해요.
    일부러 아무것도 안 하고, 창밖 하늘의 구름의 움직임만 따라가보거나, 딱 15분만 스마트폰을 덮어두고 그냥 '멍 때리기'를 시도하는 거죠.

    이 멍 때리기가 때로는 가장 치열한 자기 성찰의 시간이 되어 돌아오곤 합니다.

    시간은 사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느꼈는지'에 따라 다르게 흐르는 것 같습니다.
    시간의 흐름을 붙잡으려면, 거대한 이벤트보다 의도적인 '멍 때림'의 순간들이 더 강력한 경험의 닻이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