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 없는데도 하루가 금방 가는 시기에 드는 생각, 거대한 흐름과 발밑의 질감 사이에서
요즘 들어 문득 그런 시간을 보낼 때가 많다.
특별히 무언가를 성취해야 하거나, 거대한 사건이 터져서 온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도 없는데, 하루가 마치 쏜살같이 지나가버리는 느낌.
마치 내가 시간을 쫓아가고 있는 건지, 아니면 시간이 나를 너무나 빠르게 흘려보내고 있는 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
우리는 늘 무언가 '큰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 같다.
커리어의 다음 단계, 사회 구조의 변화, 혹은 인생이라는 거대한 퍼즐 조각 같은 것들 말이다.
이 거대한 구조 변화의 파도를 이해하고, 내가 그 안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해야 할지 끊임없이 분석하려 들 때, 머릿속은 늘 복잡한 데이터와 추상적인 개념들로 가득 차서 오히려 아무것도 붙잡지 못하는 기분이 든다.
마치 거대한 도서관의 방대한 서가 전체를 한 번에 파악하려다가, 어느 순간 어디에 가장 중요한 책이 있는지조차 잊어버린 기분이랄까.
모든 것이 너무 크고, 너무 광대해서, 정작 내가 발을 디디고 있는 이 순간의 무게감이나 질감 같은 건 간과하기 십상이다.
그래서인지, 이럴 때일수록 오히려 눈높이를 확 낮추는 경험을 하게 된다.
결국, 너무 높은 곳에서 구조를 읽으려 애쓰는 시도가 지치고 공허해질 때쯤이면, 우리의 감각은 본능적으로 가장 가까운 곳, 가장 '실재하는' 곳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게 바로 내가 말하고 싶었던 '발밑의 사소한 질감'이다.
예를 들어, 오늘 오후에 습기가 찬 아스팔트 위를 걸을 때, 그 미세하게 젖은 감촉이 발바닥을 타고 올라오는 느낌.
혹은 창가에 앉아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책상 모서리의 먼지 입자들을 어떻게 비추는지, 그 빛의 각도와 춤추는 입자의 움직임에 온 신경을 집중하게 되는 순간들.
이런 아주 사소하고, 측정 불가능해 보이는 디테일들이 갑자기 세상의 전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마치 거대한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클라이맥스라기보다는, 첼로가 내는 낮고 깊은 단 하나의 음색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과 같다.
그 사소한 질감에 몰입하는 순간만큼은,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나,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지나가냐는 초조함 같은 거창한 감정들이 마치 먼 곳의 소음처럼 희미하게 배경으로 물러나버린다.
그 순간의 '지금 여기'만이 완벽하게 나를 감싸 안는 안전지대가 되는 기분이다.
결국, 가장 큰 진실은 거창한 발견이 아니라, 발밑의 감각적인 순간들에 머무르는 것에서 온다는 걸 느낀다.
삶의 큰 그림을 읽으려 애쓰기보다, 지금 내가 발 딛고 있는 순간의 가장 작은 감각에 집중하는 것이 오히려 가장 명료한 통찰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