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피곤한 건지, 영혼이 탈진한 건지 모르겠다.
만성적인 '애매함'에 대하여**
요즘 들어서 찾아오는 피로감이라는 게, 정말 참 애매해요.
단순히 잠을 못 자서 오는 수면 부족의 피로도 아니고, 격렬한 운동을 하고 나서 찾아오는 근육의 뻐근함 같은 것도 아니거든요.
그냥, 어떤 날은 오후 세 시쯤 되니까 갑자기 머릿속이 안개 낀 것처럼 뿌옇게 변해버리고, 아무리 억지로 집중하려고 애써도 마치 솜으로 뇌를 채운 기분이랄까요.
회사에서 하루 종일 사람들과 부딪히고, 수많은 메일을 읽고, 사소한 결정들을 계속 내리다 보면, 어느 순간 에너지가 '바닥'이 되는 느낌이 들어요.
막상 퇴근하고 집에 와서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아무 생각도 안 하고 누워 있으면,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 싶다가도, 이게 또 다음 날 아침에 몽롱하게 찾아오는 무기력함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깨닫게 돼요.
마치 배터리가 100%로 충전된 것 같아도, 정작 사용하게 되면 특정 패턴의 활동(예: 낯선 사람과 깊은 대화를 나누는 것, 예상치 못한 복잡한 자료를 분석하는 것)을 할 때만 급격하게 방전되는 기분이랄까요.
예전에는 피곤하면 무조건 '수면 부족'이 원인이라고 단정 짓곤 했는데, 이제는 그 설명이 너무 단순하게 느껴져요.
뭔가 심리적인 과부하 같은 게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문득, 이 피로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내려고' 애쓰는 것보다, 그저 '어떻게 찾아왔는지'의 패턴 자체를 기록해보는 게 더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마치 탐정이 사건의 범인을 잡으려고 노력하기 전에, 일단 현장의 모든 물건들을 시간 순서대로 사진 찍어두는 것과 비슷하달까요?
예를 들어, '어제 오후 3시, A팀장님과 B프로젝트 관련해서 논의한 후'라는 맥락과 '평소보다 목소리가 높아지는 상황'이라는 감정적 요소를 함께 기록하는 거죠.
처음에는 너무 사소해서 기록할 가치가 있나 싶기도 하고, '이게 피로랑 무슨 상관이야?' 싶어서 포기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막상 며칠 동안 이렇게 기록을 이어가다 보니, '아, 내가 이 패턴을 반복하고 있구나' 하는 지점을 발견하게 돼요.
예를 들어, 주중에 특정 시간대(화요일 오후나 목요일 오전)에 무조건 에너지가 급락하는 게 아니라, 특정 '종류의 인지 활동'을 했을 때마다 패턴이 반복된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원인을 분석하려고 '왜'라는 질문만 던지다 보면 오히려 더 혼란스럽기만 한데, 그냥 '언제', '무엇을 할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만 나열해보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통제감을 되찾는 기분이 듭니다.
피로의 원인에 매달리기보다, 그 피로가 발생하는 구체적인 시간과 상황의 패턴을 기록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가장 실질적인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