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주변기기 취향이 바뀐 것 같은 건, 나만 그런 건가요?
요즘 들어 문득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요.
예전에는 '편리함'이라는 단어 자체가 삶의 미덕처럼 여겨졌던 것 같아요.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모든 과정이 얼마나 빠르고, 얼마나 효율적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강박이랄까요.
폰 알림 하나하나에 반응하고, 정보를 검색하는 속도에 맞춰 생활 리듬을 맞추다 보면, 어느새 온몸의 에너지가 '속도 유지 모드'로 최적화되어 버린 느낌이 들더라고요.
마치 모든 것이 즉각적으로 해결되어야만 가치가 있는 것처럼 살았던 거죠.
그래서 주변기기 같은 것도 그랬을까요?
처음엔 무조건 최신 사양, 가장 빠르고, 가장 세련된 디자인의 제품을 사야 '나도 트렌드를 따라가고 있다'는 일종의 심리적 만족감을 얻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고, '클릭' 한 번으로 수많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 세상에 살다 보니, 뇌 자체가 속도를 기준으로 작동하도록 재설정된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근데 이상하게 요즘 들어 그 '빠른 속도'에 대한 피로감이 너무 커진 거예요.
하루 종일 너무 많은 정보를 처리하다 보니, 어느 순간 뇌가 과부하 걸려서 제대로 된 사유를 할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인가, '잠깐 멈춰서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의 가치를 재발견한 것 같아요.
이 '멈춤'이라는 행위가 주는 사유의 밀도, 그 깊이가 예전의 '빠른 속도'가 주던 얄팍한 만족감보다 훨씬 더 단단하고 실질적인 무언가를 채워주는 느낌이랄까요.
이런 변화가 제 취향에도 영향을 미쳤는지, 전자기기 같은 것도 예전처럼 '최신 기능' 위주로 고르기보다는, 오히려 손에 잡았을 때의 질감이나, 사용하면서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가진 것들에 마음이 끌려요.
예를 들어, 무선 연결이 완벽한 최신 장비보다는, 잉크가 번지는 느낌의 만년필이나, 물리적인 무게감이 느껴지는 LP 플레이어 같은 것들이요.
이런 것들은 '속도'와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느림'을 강요하잖아요.
그 느림 속에서 내가 지금 무엇에 집중하고 있는지, 그 행위 자체에 의미를 두게 되는 거죠.
결국 주변기기 취향의 변화라는 건, 사실은 제가 삶의 태도 자체를 재정비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어요.
예전에는 '효율성'이라는 잣대로 세상을 재단했다면, 이제는 '깊이'라는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 거죠.
예전에는 무조건 넓고 많은 것을 경험해야 했다는 강박이 있었는데, 이제는 오히려 한 가지에 깊게 파고들어 그 안에서 오는 미묘한 감정의 변화에 더 큰 가치를 두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취미 생활도 바뀌었어요.
한때는 인스타그램 피드에 올릴 만한 '화려하고 빠르게 완성할 수 있는 결과물' 위주의 활동을 좋아했다면, 지금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과정 자체가 눈에 잘 띄지 않아도 괜찮은 것들에 매력을 느껴요.
예를 들어, 낯선 동네의 골목길을 목적지 없이 천천히 걸어 다니거나, 서점의 가장 구석진 곳에서 냄새를 맡으며 책을 고르는 시간 같은 것들이요.
이런 경험들은 사진으로 요약하기가 힘들잖아요?
그래서 이 '요약 불가능한 순간'들이 주는 만족감이 너무 큰 거예요.
주변기기든, 취미생활이든, 결국은 나 자신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과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속도를 늦추는 연습을 통해, 비로소 내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본질적인 '밀도'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것 같아요.
가장 빠르게 움직이려 애쓰기보다, 잠시 멈춰 서서 느리게 나를 관찰하는 시간이 요즘 나에게 가장 중요한 '주변기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