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날에도 나를 붙잡아 주는, 아주 사소해서 더 소중한 나만의 루틴들에 대하여
요즘 들어 부쩍 '탈진'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게 되었어요.
일이나 인간관계 같은 큰 틀의 문제라기보다는, 마치 배터리가 1% 남았을 때의 그 찌릿하고 무기력한 상태랄까요.
정신적으로 에너지가 바닥나서 아무것도 결정할 기력조차 없을 때가 많거든요.
이럴 때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붙잡게 되는 소소한 루틴들이 있어요.
이건 마치 생존을 위한 최후의 안전장치 같달까요.
거창하게 '나를 위한 시간' 같은 걸 계획하기 전에, 그냥 습관처럼 몸이 먼저 움직이게 만드는 일들이죠.
예를 들어, 아침에 눈을 뜨면 무조건 창가에 앉아 커피를 내리는데, 그 원두를 가는 '사각사각' 소리나, 커피가 끓는 물에 닿으며 내는 미세한 '치익' 소리 같은 것들이요.
이 소리들은 제가 의식적으로 '이 소리가 좋다'고 생각해서 하는 게 아니라, 그냥 그 소리가 들리면 몸이 반응해서 따라가게 되는 일종의 트리거 같아요.
이 루틴들은 저에게 '오늘 하루는 이 정도로만 해도 괜찮아'라는 아주 작고 사소한 허락을 주는 것 같아요.
복잡한 세상의 수많은 변수들 속에서, 오직 이 소리들만은 변하지 않을 거라는 그 예측 가능성이, 사실은 제가 무너지지 않게 붙잡아주는 가장 튼튼한 밧줄 같은 거죠.
이런 사소한 루틴들이 주는 위로는, 사실 '성취'나 '즐거움' 같은 거창한 감정과는 결이 다릅니다.
이건 일종의 '예측 가능성'에서 오는 안정감에 가깝거든요.
퇴근하고 돌아오는 길에 늘 지나던 골목길이 있는데, 저녁 시간대에는 유난히 햇빛이 비추는 각도가 달라져요.
저는 그 길을 걸을 때, 일부러 속도를 늦춰서 바닥에 떨어진 낙엽이나, 벽에 붙은 이름 모를 이끼의 질감을 눈에 담으려고 애써보곤 해요.
그 과정 자체가 명상과 다를 바가 없는데, '명상을 해야지'라는 숙제 같은 부담을 지지 않거든요.
그냥 '걸을 거니까, 이 정도만 집중해보자'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는 거예요.
이렇게 사소한 행동들의 반복 속에서, 저는 제가 여전히 '나'라는 존재로서 제 삶을 주체적으로 끌어가고 있다는 착각, 아니 어쩌면 진짜 실체를 되찾게 되는 기분이 들어요.
이런 루틴들은 저를 특별하게 만들어주진 않지만, 최소한 '나 자신에게는 오늘 이 정도의 평온함을 허락해 줄 수 있다'는 작은 자존감을 매일같이 채워주는 것 같아요.
정말이지, 에너지가 바닥났을 때 우리를 지탱해 주는 건, 거창한 동기부여가 아니라 이런 뻔하고 반복적인, 지극히 개인적인 의식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장 지쳐있을 때 붙잡는 소소한 습관이야말로, 나를 지탱하는 가장 확실하고 사소한 안전장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