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벽한 루틴에 지쳐, 그냥 흘려보내는 틈의 가치를 발견하다
요즘 들어 부쩍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다들 너무 완벽하게 짜인 삶의 설계도를 그리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들 아침 6시에 일어나서 명상하고, 7시에는 운동을 끝내고, 출근해서는 업무 시작 전 30분 동안 독서를 하고, 퇴근 후엔 반드시 새로운 언어를 공부하는 식의 '최적화된 루틴'을 자랑하잖아요.
처음엔 저도 그랬어요.
뭔가 생산적이지 않은 시간은 죄책감이 느껴지고, 하루의 공백 시간은 마치 뭔가 놓치고 있는 듯한 불안감으로 가득 찼죠.
마치 삶이라는 게 정해진 시간표에 맞춰 모든 항목을 체크해야만 제대로 살고 있다는 착각에 사로잡혀 살았던 것 같아요.
모든 것을 계획하고,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그 노력 자체가 또 하나의 거대한 에너지 소모인 건지, 어느 순간부터는 아침에 일어나서 침대 밖으로 발을 내딛는 과정조차 거대한 프로젝트처럼 느껴질 때가 많더라고요.
주변 친구들이 "너는 루틴이 뭐야?"라고 물으면, 사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막막할 때가 많아요.
'글쎄, 그냥 흘러가게 두는 게 나만의 루틴인 것 같아'라고 얼버무릴 때마다, 그 말 자체가 또 하나의 '공백에 대한 설명'이 되어버리는 아이러니함에 문득 멈칫하게 돼요.
근데 이상하게도, 그런 완벽한 계획표를 모두 찢어버리고 그냥 흘려보내는 '틈'의 순간들이, 오히려 가장 깊은 충전 시간을 주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정말 피곤해서 아무것도 안 할 수밖에 없는 주말 오후, 계획했던 카페에 가지 않고 그냥 동네 골목길을 천천히 걸어 내려가는 순간이요.
발걸음이 어디로 향하는지 스스로 통제할 수 없고, 눈에 들어오는 건물 외벽의 색깔이나, 누가 지나가다 흘린 낙엽 하나에 시선이 머무는 그 모든 '무목적적인 시간'이요.
그때는 폰을 보거나, 뭘 검색하거나, 다음 할 일을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그저 그 순간의 빛의 각도, 바람의 온도, 지나가는 사람들의 무심한 대화 소리 같은 것들만 오롯이 받아들이는 거죠.
이런 시간들을 '낭비'라고 치부하는 사회적 압박이 너무 강해서, 나 자신에게 '멍때리는 시간'을 허락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반역처럼 느껴지기도 했거든요.
하지만 그 멍때리는 시간 덕분에, 갑자기 머릿속에 엉켜있던 복잡한 생각의 매듭이 '툭'하고 풀리면서, 비로소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혹은 지금 당장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게 되더라고요.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건 완벽한 달력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여백의 미 같은 거겠죠.
삶의 속도를 조절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계획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시간'을 선물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