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주변기기 취향이 갑자기 '아날로그'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요즘 들어 주변기기나 제가 사용하는 전자기기 전반에 걸쳐서, 저도 모르게 '최첨단'이라는 수식어에 조금은 거부감이 생기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
예전 같았으면 무조건 최신 프로세서, 최고 사양의 디스플레이, 혹은 가장 화려한 RGB 조명 같은 '스펙 경쟁'에만 눈을 돌렸을 텐데, 막상 뭘 사거나 쓰려고 하면 왠지 모르게 한 발짝 물러서는 저 자신을 발견하게 돼요.
마치 모든 것이 너무 빠르고, 너무 많은 정보를 한 번에 쏟아내려고 애쓰는 것 같아서요.
이 끝없는 성능 향상이라는 홍수 속에서 살다 보니, 오히려 저희의 감각이 가장 원초적이고 느린 감각, 즉 '손끝으로 느껴지는 무게감'이나 '물질적인 저항감' 같은 것에 역설적으로 재접속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예를 들어, 아무리 쫀득하고 빠른 키감을 자랑하는 최신 기계식 키보드도 좋지만, 문득 묵직하게 '찰칵' 소리를 내며 구분감을 주는 구형 키보드를 만지작거릴 때 오는 그 안정감이 있잖아요.
그 소리가 주는 리듬감이나, 버튼을 누를 때 느껴지는 적당한 탄성의 피드백이, 얇고 매끄럽게 모든 것을 처리하는 최신 터치스크린의 느낌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만족감을 주기 때문에 그런 건지, 이게 단순한 취향 변화인지 아니면 일종의 디지털 피로 증상인지 저 스스로도 의문을 던지게 됩니다.
이런 현상이 단순히 기기적인 부분에만 국한된 건 아닌 것 같아요.
전반적인 소비 패턴이나 취미생활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보입니다.
무한히 스크롤되는 숏폼 콘텐츠에 익숙해지다 보니, 오히려 처음부터 끝까지 짜임새 있게 구성된 장편 소설이나, LP판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잡음과 함께 흐르는 아티스트의 의도적인 '느림'의 미학에 더 깊이 끌리게 됩니다.
마치 우리의 뇌가 너무 과부하가 걸려서, 가장 에너지를 덜 쓰면서도 깊은 만족감을 주는 '저항점'을 찾아 헤매는 건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요즘은 화려한 디지털 기기보다는, 만졌을 때의 촉감이나, 시간이 지나도 가치를 잃지 않는 견고한 재질의 물건들—예를 들어, 잉크가 깊게 배어 나오는 만년필의 펜촉이나, 시간이 흐를수록 멋스러워지는 가죽 소재의 다이어리 같은 것들이요.
이런 '느린 사치' 같은 것들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이, 어느 정도의 최첨단 기술적 만족감보다 훨씬 더 오래가고 깊게 남는 기분입니다.
결국 우리가 원했던 건 '더 빠른 것'이 아니라, '나만의 속도를 지킬 수 있는 것'이었나 봐요.
우리가 기술 발전의 최전선에 서 있으면서도, 가장 위안을 얻는 건 역설적으로 손때 묻은 아날로그의 감성들인 것 같아요.
최첨단 기술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오히려 느리고 물질적인 감각에 재접속하며 심리적 안정을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