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쳐 쓰러질 것 같은 날에도 나를 붙잡아주는, 이상하게도 굳건한 소소한 루틴들에 대하여
요즘 들어 부쩍 ‘무기력’이라는 단어의 무게가 뭘까 싶습니다.
마치 근육통처럼 온몸의 에너지가 바닥을 치고, 머릿속은 수많은 업무와 관계들로 돌아가는 복잡한 회로기판처럼 과부하가 걸린 느낌이랄까요.
큰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면 찾아오는 그 허탈감, 혹은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순간부터 느껴지는 만성적인 피로감 같은 것들이 일상처럼 자리 잡았습니다.
다들 그렇게 사는 건지, 저만 이렇게 매번 에너지가 고갈되는 건지 가끔은 회의감이 들기도 하고요.
이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나라는 작은 부품 하나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건지조차 의심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날에도 저를 지탱하게 만드는 것이, 거창한 동기 부여나 대단한 성취 같은 것들이 아니더라고요.
오히려 너무 사소해서 ‘이게 무슨 도움이 되나?’ 싶을 정도의,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행동들이 저를 겨우 붙잡아 줍니다.
예를 들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습관적으로 창문을 열고 5분 동안 창밖의 나무들 움직이는 것만 멍하니 바라보는 것 같은 겁니다.
이 행동 자체에 어떤 의미 부여를 하려고 애쓰지 않는데도, 이 5분이라는 시간 동안만은 제가 온전히 '나'로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안전지대 같은 거예요.
이 루틴이 마치 복잡한 삶이라는 시스템을 지탱하는 가장 단순하고 믿음직한 기초 공사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저는 이 루틴들을 ‘의지’로 지키려고 애쓰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에너지 소모라고 느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루틴을 깨도 괜찮아’라고 스스로에게 허락해주기도 했고요.
그랬더니 하루가 엉망이 되더라고요.
평소라면 잊지 않고 챙기던 작은 습관들—예를 들어 퇴근길에 무조건 같은 골목길을 돌아가거나, 점심 식사 후 반드시 이어폰을 끼고 아무 생각 없이 음악을 듣는 행위 같은 것들이요—이 사라지면, 하루 전체의 궤도가 미세하게 틀어지면서 저도 모르게 불안정해지는 걸 느낍니다.
마치 건물의 가장 아랫부분의 기초가 흔들리면 위층의 화려한 장식들이 아무리 튼튼해도 결국 균형을 잃는 것과 비슷해요.
이 반복적인 행동들은 제게 '일관성'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감각을 되찾아 줍니다.
이 사소한 의식들이 주는 안정감은, 마치 매일 아침 자전거를 탈 때 페달을 밟는 그 리듬감과 같아요.
처음엔 힘겨워서 페달을 밟는 것도 버거운데, 어느 순간 그 리듬 자체가 몸에 익고, 어느 정도 속도가 붙으면 별다른 생각 없이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처럼요.
삶도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아주 작은 반복의 고리를 찾아내고 그것을 지켜나가는 것, 그것이 사실은 가장 강력한 자기 방어 메커니즘이 되어주는 것 같습니다.
결국 우리 삶의 가장 복잡한 시스템은, 가장 사소하고 반복적인 루틴의 안정성이라는 단단한 기초 위에 구축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삶의 거대한 흐름에 압도될 때는, 통제 가능한 가장 작은 반복의 고리 하나를 찾아 그것을 지키는 것이 가장 큰 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