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텅 빈 시간 앞에서 느끼는, 설명하기 힘든 그 묘한 피로감에 대하여 요즘 들어 부쩍 '피곤하다'는 말이 단순한 수면 부족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텅 빈 시간 앞에서 느끼는, 설명하기 힘든 그 묘한 피로감에 대하여
    요즘 들어 부쩍 '피곤하다'는 말이 단순한 수면 부족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진짜 몸이 아픈 것도 아니고, 뭘 하다가 지친 것도 아닌데, 그냥 하루 종일 멍하니 앉아있거나, 혹은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나면 온몸의 에너지가 쭉 빠져나간 기분이랄까요.
    마치 배터리가 닳았는데, 배터리 잔량 표시창이 '충전 중'이라고 속여주는 것 같은 그런 느낌?

    회사에 앉아있으면 주변 사람들은 다들 무언가에 몰두해 보이잖아요.
    누군가는 회의록을 정리하고, 누군가는 다음 프로젝트 계획을 짜고, 심지어 점심시간에 친구들과의 대화 속에서도 끊임없이 '다음 주제'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저도 그 흐름에 휩쓸리다 보면, 나도 모르게 무언가를 '채워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거든요.

    공백의 순간을 견디지 못해서, 억지로 유튜브를 틀거나, 의미 없는 뉴스 기사를 스크롤 하거나, 혹은 남들이 보기에는 '뭔가 생산적인 활동'처럼 보이는 검색창을 열어놓기도 해요.
    그게 진짜 내가 원하는 활동이 아니라, 그저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기 위한 방어 기제'처럼 느껴질 때가 많아요.

    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저를 가장 지치게 하는 것 같아요.
    마치 삶 자체가 끝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 같아서, 잠시 멈추면 뒤처지는 기분이 드는 거죠.

    그래서 요즘은 오히려 그 공백 자체를 관찰하는 연습을 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이때 뭘 해야 하지?'라는 질문 대신, '지금 이 순간, 내 몸과 마음은 어떤 상태일까?'라고 질문을 바꿔보는 거죠.

    예를 들어,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창밖을 멍하니 바라본다고 해봐요.
    예전 같으면 '아, 이 시간에 뭐라도 봐야 하는데'라는 자책감에 시달렸을 텐데, 요즘은 그냥 그 빛의 각도,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 혹은 저 멀리 보이는 건물 모서리의 그림자 같은 것들을 그저 '관찰'하는 거예요.
    판단하지 않고, 평가하지 않고, '흥미롭다'거나 '지루하다'는 감정의 필터를 씌우지 않고 순수하게 데이터처럼 받아들이는 연습이요.

    이게 처음에는 너무 어색해서, 오히려 '내가 지금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어요.
    내가 지금 쉬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상기시켜줘야 하는 기분이랄까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그 공백의 시간들이 오히려 가장 나다운 시간이라는 걸 깨닫게 되더라고요.
    아무런 목적이나 결과물이 요구되지 않는, 오롯이 나만을 위한 '틈'이라는 걸 말이에요.

    그 틈에서 문득 내가 진짜로 뭘 좋아하는지, 뭘 할 때 비로소 심장이 차분하게 리듬을 타는지 같은 것들이 아주 조용하게, 하지만 명확하게 들려오는 것 같아요.
    결국,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채워져야 하는 것'에 익숙해져서, 비어있음의 가치를 잊고 살았던 건 아닐까요.

    지금 느끼는 막연한 피로는 '부족해서'가 아니라 '너무 채우려고 애썼기 때문에' 생기는 마음의 배터리 방전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