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들어 자꾸 '느낌'에 끌리는 것 같아요. 스펙만으론 설명 안 되는 것들이요. 본문1 문득 요즘 들어 내가 무언가를 선택하거나 평가할 때,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 들어 자꾸 '느낌'에 끌리는 것 같아요.
    스펙만으론 설명 안 되는 것들이요.

    문득 요즘 들어 내가 무언가를 선택하거나 평가할 때,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전 같았으면 '숫자'로 모든 걸 재단하려고 애썼잖아요.
    "CPU는 몇 개인지", "카메라는 몇 메가픽셀인지", "배터리 지속 시간은 몇 시간인지" 같은 것들이 마치 성공의 공식처럼 여겨지던 시절이었죠.

    저희 세대가 자란 환경 자체가 모든 것을 정량화하려는 경향이 강했나 봐요.
    그래서 우리는 무의식중에 '스펙 시트'라는 신성불가침의 문서에 매달렸고, 그 숫자들이 곧 그 물건의 가치라고 착각했던 것 같아요.

    물론 스펙이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에요.
    기준점이 되니까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무리 최신 사양의 물건을 손에 쥐고, 그 스펙표를 꼼꼼하게 읽어봐도, 왠지 모를 공허함이 남을 때가 많아졌어요.

    마치 완벽하게 조립된 레고 블록 같달까요?
    기능적으로는 빈틈이 없는데, 그래서 그 공간에 어떤 '온기'가 들어갈지 알 수가 없는 기분이랄까요.
    특히 물건을 고를 때 그런 기분이 극대화돼요.
    예를 들어 카메라를 살 때도 그렇죠.

    최고 사양의 기계를 보면 '이건 무조건 좋아야 한다'는 강박이 생기는데, 막상 써보면 그 차이가 그렇게 드라마틱하지 않거나, 혹은 그 기계가 가진 '디자인의 결'이나 '사용했을 때의 그 느낌' 같은 것이 빠져있으면 오히려 아쉽더라고요.
    그 아쉬움은 데이터베이스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감성적인 영역에 속해있어요.
    마치 오래된 필름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다가, 새 플래그십 모델을 앞에 두고 멈칫하는 순간 같은 거예요.
    '이게 정말 더 나은 걸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올라오는 거죠.

    이 질문의 핵심은 결국, 우리 뇌가 이제 '효율'만을 추구하는 단계를 넘어,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 '의미'라는 게 바로 경험에서 오는 것 같아요.
    경험은 절대 0과 1로 나눌 수 없는, 그 특유의 모호하고 따뜻한 질감을 가지고 있잖아요.

    여행을 예로 들어볼게요.
    계획대로 움직인 여행은 완벽한 스펙을 가진 여행일 수 있어요.

    모든 숙소가 별점 5개, 모든 이동 수단이 가장 빠른 경로로 체크되죠.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요?

    갑자기 비가 와서 우산을 잃어버렸다가, 근처 골목길의 작은 카페에서 우산을 빌려 쓰고 마셨던, 그 '엉뚱한 우연'의 순간들이잖아요.
    그 순간의 눅눅한 흙냄새, 낯선 사람과 나눈 짧은 농담, 계획에 없었기에 생겨난 그 미묘한 시간의 틈새가 바로 '경험의 파동'인 거죠.

    결국 우리가 추구하는 건, 완벽한 결과물 자체라기보다는 그 결과물을 향해 나아갔던 '과정의 밀도'인 것 같아요.
    삶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잖아요.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는 것(스펙)보다, 그 과정에서 겪었던 좌절을 친구와 밤새 이야기하며 위로받았던 시간(경험)이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잖아요.
    혹은 최신 기술의 편리함(스펙)을 누리는 것보다, 아날로그적인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냈을 때 오는 뿌듯함(경험)이 훨씬 더 오래 지속되는 기분이에요.
    어쩌면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결과물'만을 중시하는 사회 시스템 속에서 살았고, 이제 그 시스템의 과부하가 오면서 우리의 감각이 본능적으로 '느낌'이라는 더 본질적인 가치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한 건 아닐까 싶습니다.

    이 감각의 변화를 인정하고, 조금은 느려져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허락해주는 시간이 필요해 보여요.

    결국 삶의 진정한 가치는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오직 우리만이 기억하는 '느낌의 밀도'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