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몇 점짜리 나'보다 '어떤 경험을 한 나'를 더 궁금해하는 시대가 온 것 같아요.
요즘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취업 관련 글들을 보면, 예전 같았을 때처럼 '이 학벌이요', '이 자격증이요' 같은 딱 떨어지는 스펙 자랑이나 스펙 나열식 자랑이 예전만큼 먹히지 않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물론 스펙이 기본 바탕이 되는 건 변함없지만, 그 스펙이라는 틀 안에 갇혀서 '이 정도는 해야지'라는 최소한의 기준만 겨우 넘기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점점 옅어지고, 오히려 그 스펙을 얻는 과정에서 겪었던 '삐끗함'이나 '엉뚱한 시도' 같은, 그러니까 스스로 정의한 '틈'에 사람들이 더 큰 가치를 두는 것 같아요.
저는 이 현상을 보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정답지'가 없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완벽하게 설계된 커리어 로드맵 같은 건 AI가 더 잘 짜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럴수록 사람들은 기계가 따라 할 수 없는, 나만의 불완전하고 그래서 더 생생한 '여정의 흔적'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 사회가 너무 '최적화'에 집착했던 게 아닐까 싶어요.
모든 것이 KPI(핵심성과지표)로 환원되고, 과정의 어려움보다는 최종 결과물만 빛나는 구조에 익숙해져 버렸잖아요.
그러다 보니 우리 스스로도 '완벽한 스펙'이라는 단 하나의 기준점을 세우고, 그 점에 도달하기 위해 남들이 정해놓은 가장 안전하고 효율적인 길만 걷려고 애쓰게 된 거죠.
그런데 막상 그 완벽한 지점에 도착해 보니, 문득 '이게 내가 원했던 나인가?'라는 공허함이 밀려올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그 완벽한 지도 위의 점(Spec)보다는, 그 점에 도달하기 위해 우회로를 택했거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 잠시 멈춰 서서 다른 풍경을 봤던 그 '돌발 경험'이라는 것을 더 꺼내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경험'이라고 말할 때 단순히 여행을 많이 다닌다는 뜻을 넘어서는 것 같아요.
그것은 '문제를 만났을 때, 내가 가진 도구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어서 그때그때 주변의 자원이나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땜질해 나갔던 그 지혜의 총합' 같은 겁니다.
예를 들어, A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기술적인 문제는 아니지만, 갑자기 이해관계자들 간의 감정적 충돌로 프로젝트가 멈췄다고 해봐요.
이때의 경험은 어떤 자격증이나 학점으로는 절대 채워지지 않는, '사람을 다루는 방법'이라는 생존 기술을 배우는 과정이 되잖아요.
이런 비정형적이고 복잡한 경험들이 쌓이면서, 사람들은 '이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엉켜버린 실타래를 풀 줄 아는 사람이구나'라는 무형의 신뢰를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결국, 우리가 점점 '사양'보다 '경험'을 중시하는 건, 더 이상 세상이 정해놓은 매뉴얼대로만 움직이는 삶은 지루하고, 예측 불가능한 진짜 삶의 묘미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일 겁니다.
그 틈새에서 발견하는 '나만의 서사'가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 시대라는 생각이 강하게 드네요.
우리가 진정으로 가치를 두는 것은 완벽한 스펙 자체가 아니라, 그 스펙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겪었던 예측 불가능한 '나만의 서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