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가졌는가'보다 '어떻게 겪었는가'가 나를 채우는 법에 대한 짧은 생각**
요즘 들어 문득 이런 생각을 자주 하게 돼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무언가를 성취하거나, 어떤 물건을 구매하거나, 심지어 누군가를 평가할 때도, 늘 '사양(Specification)'이라는 틀에 갇혀서 돌아보는 경향이 너무 강하다는 거예요.
스펙이라는 게 꼭 졸업장이나 자격증, 혹은 최신 기능이 탑재된 스마트폰의 사양 리스트 같은 느낌이잖아요.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 '이 부분이 빠지면 가치가 떨어진다'와 같은, 일종의 명확하고 계량화된 기준들이 우리를 지배하는 것 같아요.
마치 삶 자체가 체크리스트를 채워나가야만 비로소 '성공적'이라는 도장을 찍을 수 있을 것처럼요.
이 과정에서 우리는 종종 그 과정 자체에서 느꼈던 미묘한 감정의 결, 예상치 못한 시행착오의 배움, 혹은 그 과정 속에서 만났던 사람들과의 휘발성 강한 교류 같은 것들은 너무 사소하거나, 혹은 '나중에 정리할 자료' 정도로 치부해 버리곤 합니다.
마치 훌륭한 결과물만 남기고, 그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땀 흘리던 모든 순간의 온도와 질감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요.
그래서인지,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고 삶의 굴곡을 몇 번 겪어내다 보니, 막상 결과만 놓고 비교하는 건 너무 얄팍하고 공허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요.
그래서 요즘은 일부러 '과정 중심'의 기록을 남기려고 노력해요.
예를 들어, 어떤 프로젝트가 처참하게 실패했을 때, 그 실패 자체를 '만약 ~했다면'이라는 가정의 영역으로 두지 않으려고 애쓰는 거예요.
대신, "우리가 A라는 결정을 내렸을 때, 당시 B라는 리스크를 간과했던 지점은 무엇이었을까?", "만약 이 과정에서 C라는 피드백을 듣고 즉시 수정했다면, 결과는 어떻게 달라졌을까?"와 같이, '왜'와 '어떻게'라는 맥락적 질문에 집중하는 거죠.
이게 정말 재미있어요.
스펙으로만 보면 '실패'라는 단어로 끝날 수 있는 사건이, 맥락을 부여하는 순간 수많은 '배움의 지점(Learning Points)'이라는 보석으로 변모하는 걸 목격하게 되거든요.
이 맥락들을 차곡차곡 정리하다 보니, 나 스스로가 '내가 어떤 환경에서 어떤 방식으로 반응하는 사람인지'에 대한 일종의 작동 매뉴얼을 갖게 되는 기분이 들어요.
단순히 '이런 걸 할 수 있다'를 넘어, '나는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 이런 식으로 사고의 틀을 짜는 사람이다'라는 근원적인 자기 이해가 생겨나는 거죠.
이 과정은 마치 퍼즐 조각을 맞추는 것 같기도 하고, 어둡고 복잡한 사진을 현상하는 과정 같기도 해요.
빛이 어디서 왔는지, 그림자가 어디에 드리워졌는지를 이해해야만 비로소 전체 그림이 선명해지는 것처럼 말이에요.
결국 우리가 진정으로 풍요롭다는 건, 쌓아 올린 명함이나 포트폴리오의 두께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을 관통하는 나만의 '서사(Narrative)'가 얼마나 입체적이고 깊이 있는가에 달려있다는 생각이 요즘 가장 크게 와닿아요.
우리는 결과물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결과물에 도달하기까지의 의미 있는 여정 자체를 기록하고 재정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