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좋은 건 숫자로 증명하는 게 아니라, 직접 써보고 느껴봐야 아는 것 같다는 생각
요즘 들어 문득 이런 생각이 자주 든다.
우리가 무언가를 평가할 때, 예전에는 ‘스펙’이라는 거대한 숫자들의 향연에 지나치게 의존했던 것 같은데, 시간이 갈수록 그 숫자들의 무게가 점점 가벼워지는 건 아닐까 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예전만 해도 새 스마트폰이 나오면 'A17 칩셋 탑재', '120Hz 주사율', '5000mAh 배터리' 같은 키워드들이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포장되어 우리 눈앞에 펼쳐지곤 했다.
사람들은 그 숫자들을 보고 '와, 이건 무조건 최고다!'라며 열광했고, 마치 그 숫자들이 곧 '최고의 품질'을 보증하는 절대적인 증명서인 양 받아들였던 것 같다.
자동차를 살 때도 그랬고, 가전을 고를 때도 그랬다.
매체들이 쏟아내는 방대한 비교표 앞에서 우리는 가장 높은 수치를 가진 제품을 선택하는 게 당연한 숙명처럼 여겼다.
문제는 그 숫자들이 주는 만족감이 실제 사용 경험과 괴리가 클 때가 너무 많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광고 속에서 보여주는 압도적인 성능 수치와, 막상 내가 사용하면서 느끼는 ‘어?
뭔가 좀 뻑뻑한데?’ 하는 미묘한 감각 사이의 간극 말이다.
그 간극을 채우기 위해 우리는 더 높은 숫자를 갈망했지만, 그 숫자들이 보여주는 것은 종종 화려하게 포장된 '잠재력'일 뿐, 실제로 내 일상에 녹아드는 '편안함'이나 '만족감'은 아니었던 것 같다.
결국, 수치라는 것은 그 제품이나 서비스가 가질 수 있는 '최대치'만을 보여줄 뿐,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며 사용할지에 대한 맥락까지는 절대 담아낼 수 없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단순히 전자기기 같은 가공품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
내가 최근에 경험한 몇 가지 일들에서 그 패턴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맛집을 찾아갈 때도 그랬다.
인스타그램에서 '미슐랭 빕 구르망', '줄 서는 곳', '인터넷 평점 4.8점' 같은 수치들이 나를 이끌었다.
그 수치들을 믿고 찾아간 곳들이 분명히 '평균 이상'은 맞았다.
하지만 그곳에 도착해서, 그 수치들만 믿고 음식을 앞에 두고 먹기 시작하면, 어딘가 모르게 '진짜'의 결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오히려 평점은 낮지만, 단골들이 조용히 추천해 주는, 간판도 화려하지 않고 그냥 동네 골목에 있는 작은 가게에서 만난 음식들이 마음을 더 깊이 울리곤 했다.
그건 단순히 '맛있다/맛없다'의 차원을 넘어선, 그 장소의 시간의 흐름, 사장님의 손맛이라는 비가시적인 '맥락'이 더해진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점점 더 복잡하고 자극적인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다 보니, 오히려 가장 단순하고 인간적인 연결고리, 즉 '직접 부딪혀보는 과정' 그 자체에서 오는 온전한 만족감을 갈망하게 된 것은 아닐까 싶다.
이제는 누군가 말해주는 '최적의 선택지'보다는, 내가 직접 발을 디디고, 손으로 만져보고, 시간을 들여 그 안에서 부딪히며 얻어내는 '나만의 이야기'가 훨씬 더 가치 있는 자산이 되어버린 것 같다.
이 모든 변화의 기저에는, 결국 '나 자신'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게 된 현대인의 심리가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해본다.
결국 좋은 것은 객관적인 데이터가 아닌, 나만의 경험을 통해 체득하는 주관적인 감각으로 판단하게 된다.
결국 어떤 것의 가치란, 수치로 증명하려 하기보다 내 삶의 맥락 속에서 직접 부딪히며 체감하는 영역에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