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날처럼 이것저것 만지던 재미는 어디로 갔을까? 요즘은 '안정성'이 최고인 이유에 대하여 요즘 들어 문득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옛날처럼 이것저것 만지던 재미는 어디로 갔을까?

    요즘은 '안정성'이 최고인 이유에 대하여
    요즘 들어 문득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예전에는 뭔가 복잡한 설정을 만져보거나, 시스템의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면서 '내가 이 기계를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는 일종의 지적 쾌감을 느끼는 재미가 컸는데, 요즘 들어 그 '만지는 재미'가 예전만 같지 않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여전히 깊게 파고들어 최적화를 거치는 즐거움이 사라진 건 아니지만, 뭔가 막상 깊숙이 손을 대려고 하면 '혹시 이걸 건드려서 전체가 꼬이면 어떡하지?' 하는 막연한 불안감이 앞설 때가 많다.
    마치 고전적인 기계 장치를 만지는 기분이랄까.

    여기저기 버튼을 누르고, 값을 변경해보고, 이 설정과 저 설정 사이의 미묘한 상호작용을 예측하려 애쓰는 과정 자체가 일종의 유희였는데, 그 유희의 대가로 감수해야 하는 '예측 불가능성'의 리스크가 너무 커진 건 아닐까 싶다.
    처음에는 그 복잡성이 매력적이라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 복잡성이 오히려 나를 지치게 만드는 주범이 되어버린 기분이다.

    마치 너무 화려해서 눈이 아픈 네온사인이 가득한 거리에서, 결국 가장 편안하고 익숙한 가로등 불빛이 주는 안도감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과 비슷하다.
    결국 우리가 추구하는 '경험'의 본질이 '최대치의 변주'가 아니라 '최소의 마찰' 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건 아닌지,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안정성'이라는 키워드가 갑자기 엄청난 가치를 가지게 된 것 같다.

    안정성이란 단순히 '고장 나지 않는다'는 수준을 넘어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특정 작업을 할 때, 그 과정이 너무나 예측 가능해서 '이 정도면 무조건 돌아갈 거야'라는 무의식적인 신뢰가 생기는 상태 말이다.

    예를 들어, 매일 아침 출근할 때 이용하는 지하철 노선이나, 오랫동안 사용해서 손에 감이 배어버린 특정 소프트웨어의 인터페이스처럼,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뇌가 일종의 '근육 기억(Muscle Memory)'을 갖게 되는 영역이 있다.

    이런 곳에서 얻는 만족감은, 아무리 멋진 커스터마이징을 하더라도 얻기 힘든 종류의 '지속 가능한 평온함'이다.
    이 평온함 덕분에 우리는 시스템 자체의 작동 원리보다는, 그 시스템을 활용해서 무엇을 만들어낼지라는 본질적인 창작 활동에 온전히 에너지를 쏟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너무 많은 선택지가 오히려 결정을 마비시키고, 너무 많은 '만질 수 있는 부분'은 오히려 창작의 흐름을 끊어버리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여있는 것 같다.
    결국 시스템을 가장 잘 활용한다는 건, 가장 화려한 기능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가장 믿음직하게 제 역할을 수행해주는 '기반'을 확보하는 것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우리가 원하는 건, 복잡한 설정값 속에서 길을 잃는 재미가 아니라, 언제나 제자리에서 빛을 내는 믿음직한 기반 위에서 창작에 몰입하는 평온함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