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제가 기기 고르는 기준이 좀 이상해졌어요. (feat. 감성 소비) 어릴 적부터 혹은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저는 늘 '최적화'라는 단어에 갇혀 살았던 것 같아요.

    요즘 제가 기기 고르는 기준이 좀 이상해졌어요.
    (feat.
    감성 소비)

    어릴 적부터 혹은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저는 늘 '최적화'라는 단어에 갇혀 살았던 것 같아요.
    주변기기를 고르는 과정 자체도 하나의 숙제 같았죠.

    '이건 DPI가 몇인지', '지연 시간(Latency)은 얼마나 낮은지', '전력 효율은 어떤지' 같은 스펙 시트의 숫자들이 저에게는 일종의 성적표 같았거든요.
    정말 성능이 조금이라도 더 좋으면, 제 작업의 효율성이 극적으로 상승할 거라고 굳게 믿었으니까요.
    예전 같으면 무조건 최고 사양의 제품을 사야 직성이 풀릴 지경이었고, 만약 어떤 키보드의 스위치가 '청축'이 아니라 '갈축'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이건 뭔가 부족해'라는 강박에 시달리기도 했어요.

    마치 컴퓨터의 부품 하나하나를 완벽하게 맞추는 레고 블록을 조립하듯, 모든 것이 논리적이고 측정 가능한 수치로 완벽하게 돌아가야 안심이 되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심지어는 '이거 하나만 바꾸면 작업 속도가 20% 빨라질 거야' 같은 막연한 기대감에 지갑을 열기도 했고요.
    그때의 저는 기술 자체에 대한 존경심과, 그 기술이 가져다줄 '성취감'이라는 보상 심리가 결합된, 아주 실용적이고 계산적인 소비를 하던 사람이었나 봐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막상 가장 비싸고 스펙이 좋은 장비를 갖추고 앉아 작업에 몰두하다 보면, 문득 묘한 공허함이 찾아오더라고요.
    아무리 완벽하게 설계된 마우스라도, 손에 쥐었을 때 이질적인 무게감이나 미세하게 거슬리는 틈이 느껴지면, 갑자기 손목에 피로가 몰려오는 기분이랄까요?

    어느 날부터인가, 저는 '가장 좋은 것'보다는 '가장 편안한 것'을 찾기 시작했어요.

    예를 들어, 아무리 반응 속도가 빠르다고 광고하는 키보드보다, 오랫동안 타이핑하고 나면 손가락 끝에 닿는 감촉이 부드럽고, 타이핑할 때 '찰칵'거리는 소리가 너무 크지 않은, 듣기 좋은 '소리'를 가진 키보드에 더 마음이 끌리더라고요.
    혹은 헤드폰도 마찬가지예요.
    최신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가장 뛰어나다는 제품 대신, 예전에 쓰던 빈티지한 디자인에, 귀를 감싸는 패딩의 재질감이나, 이어컵을 돌려가며 만지작거릴 때 느껴지는 적당한 무게감이 더 좋다고 느껴지는 거죠.
    결국 제가 발견한 건, 기술이 주는 '효율성'이라는 딱딱한 외피를 걷어내고, 그 안에 숨어있는 '사물과의 작은 교감' 같은 거였어요.

    마치 잘 만든 공예품을 만지작거리거나, 오래된 책의 종이 냄새를 맡을 때 느끼는, 설명하기 힘든 아늑함 같은 거요.

    요즘은 사물이 저에게 '도구'이기 이전에, 저의 일상 속에서 조용히 함께하는 '친구' 같은 느낌을 주는 게 더 중요해진 것 같아요.
    결국 기계를 고르는 기준은 스펙의 숫자가 아니라, 손끝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감정의 여운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