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어느 순간부터 '스펙'보다 '그때의 느낌'을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됐을까
문득 돌이켜보면, 저도 참 '사양'에 목을 맸던 사람이었어요.
어릴 때부터 그랬는지, 무언가를 살 때 늘 가장 높은 사양, 가장 최신 모델, 혹은 가장 브랜드 가치가 높은 것을 기준으로 삼곤 했어요.
예를 들어, 카메라를 살 때도 '메가픽셀 수'나 '최신 센서'라는 숫자에 너무 현혹되곤 했죠.
혹은 여행을 계획할 때도 항공권 등급이나 숙소의 별점, 인테리어의 고급스러움 같은 가시적인 '스펙'들이 저의 만족도를 좌우하는 것 같았어요.
남들이 가진 최신 스마트폰을 보면, 그 스펙 시트가 마치 저에게 일종의 '성공의 증거'처럼 느껴지기도 했고요.
어쩌면 그게 또래 집단에서 요구하는 일종의 무의식적인 비교 기준이었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정말 많은 경험들을 겪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엄청난 스펙들을 자랑하기 위해 지출한 시간과 돈이, 막상 그 물건을 사용하고 난 후 남는 건 '사진 파일'이나 '영수증'뿐이라는 거예요.
물론 그 물건 자체의 기능적 우월함은 부정할 수 없지만, 뭔가 텅 빈 느낌이랄까요?
마치 최고급 엔진을 장착한 차를 샀는데, 목적지까지 가는 길이 너무 지루해서 그 엔진의 성능을 제대로 체감할 새도 없었던 기분이랄까요.
결국 제가 깨달은 건, 인간의 만족도가 '소유하는 것'의 크기나 성능의 수치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어요.
오히려 그 경험이 나에게 주는 '시간의 질감' 같은 게 훨씬 중요하다는 거죠.
예를 들어, 아주 비싼 레스토랑에서 근사한 코스를 먹는 것보다, 동네 골목 어귀의 작은 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과 마주 앉아 나누는 소박한 대화가 주는 따뜻함이, 그 어떤 5성급 레스토랑의 완벽한 플레이팅보다 오래 기억에 남는다는 걸 깨달았어요.
이 '기억'이라는 건, 사양으로 측정할 수 있는 어떤 데이터 값으로도 환산이 안 되는, 아주 비정형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거든요.
최근에 친구들과 갑자기 계획 없이 떠난 근교 여행이 대표적인 예예요.
그날 날씨가 조금 흐리고, 숙소도 엄청나게 화려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 덕분에 오히려 저희가 길을 헤매고, 예상치 못한 작은 카페에서 멈춰 서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순간들'이 생겼고, 그 순간들이 모여서 꽤 짙은 추억의 색채를 만들어냈어요.
그 '헤매는 과정' 자체가 최고의 콘텐츠가 된 거죠.
이 경험을 되돌아볼 때, 저는 '이걸 위해 이 돈을 썼나?'라는 질문 대신, '이 경험 덕분에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성장했나?'라는 질문을 던지게 됐어요.
이게 아마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얻게 되는, 일종의 '감가상각이 되지 않는 가치관'을 구축하는 과정이 아닐까 싶어요.
결국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은 완벽한 사양의 결과물이라기보다, 그 과정을 거치며 쌓이는 시간 속의 따뜻하고 생생한 감각들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