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좋은 도구란, 나의 사유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고 조용히 받쳐주는 배경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 들어 장비에 대한 취향이 확 바뀌었다는 걸 주변 사람들에게 종종 이야기하곤 합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저는 최신 트렌드를 따라가는 데 열광했던 것 같아요.
'이거 쓰면 생산성이 30% 올라간대!', '이 기능이 없으면 작업 자체가 불가능해!'라며 온갖 화려하고 기능이 많은 주변기기들을 모으는 데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았죠.
키보드는 RGB 백라이트로 화려하게 빛나야 할 것 같았고, 마우스는 최고의 DPI 수치를 자랑해야 할 것 같았으며, 모니터 배열 하나하나에도 '이게 최적화된 세팅이다'라는 강박이 있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때의 저는 '내가 가진 장비의 스펙'에 대한 만족감으로 제 작업의 깊이를 착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마치 제가 복잡한 장비들로 쌓아 올린 성벽 안에 갇혀서, 그 벽돌들 자체를 감상하는 데 몰두했던 기분이었달까요.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즉 '내가 생각하고 정리하려는 생각의 흐름' 자체를 놓치고 있었던 거죠.
수많은 버튼, 끊임없이 깜빡이는 불빛, 과도하게 복잡한 소프트웨어 설정들… 이 모든 것들이 제 사유의 틈새에 미세한 노이즈를 만들어내고, 저는 그 노이즈를 '최적화'라는 이름으로 계속 붙잡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다 문득, 정말 깊이 몰입해서 무언가를 써내려가거나, 혹은 복잡한 문제의 실마리를 풀어나가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어요.
그 순간에는 갑자기 화려한 백라이트가 눈에 거슬리고, 지나치게 많은 포트가 오히려 복잡한 미로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그때 깨달은 게, 정말 좋은 도구란 사용자에게 '나를 봐달라'고 주장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저 존재 자체를 감지하기 어려울 만큼 배경처럼 조용히 자리를 지켜주는 것이라는 거예요.
요즘 제가 신경 쓰는 부분은 '기능의 최대치'가 아니라 '방해 요소의 최소치'예요.
그래서 키보드는 빛이 거의 나지 않는 무광 블랙 계열로 바꾸었고, 마우스는 그립감은 최고지만 소리가 거의 나지 않는 저소음 모델로 바꿨습니다.
모니터도 화려한 캘리브레이션보다는, 눈에 가장 편안한, 군더더기 없는 무채색의 시야를 주는 것에 중점을 두게 되었죠.
이렇게 주변기기들을 '사치품'이 아니라 '고요한 조력자'의 관점으로 바라보게 되니까, 비로소 제가 진짜 하고 싶은 작업 자체에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장비빨이 아니라, 결국 '나 자신'이라는 가장 중요한 하드웨어를 관리하는 법을 배우고 있는 기분이랄까요.
결국 최고의 도구는 나의 생각의 흐름을 가장 눈에 띄지 않게 받쳐주는 배경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