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벽함의 시대에, 우리는 왜 살짝 삐뚤어진 것에서 더 큰 재미를 느끼는 걸까? 본문1 요즘 들어 문득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돼. 우리는 너무 '완벽'해지려고 애쓰는 시대에 살고 있는 건 아닌가

    완벽함의 시대에, 우리는 왜 살짝 삐뚤어진 것에서 더 큰 재미를 느끼는 걸까?

    요즘 들어 문득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돼.

    우리는 너무 '완벽'해지려고 애쓰는 시대에 살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

    모든 것이 최적화되고, 모든 것이 매끄럽고, 모든 것이 정답을 향해 수렴하는 것 같은 느낌?
    업무 보고서부터 시작해서, 심지어 우리가 소비하는 물건들의 디자인까지도 '최소한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수준으로 다듬어져 있잖아.
    물론 효율적이고 보기 좋다는 장점은 분명히 있어.

    하지만 가끔은 말이야, 이 지나친 완벽함이 오히려 우리 눈을 피곤하게 만드는 순간들이 있더라고.
    예를 들어, 디지털로 완벽하게 보정된 사진들을 계속 접하다 보면, 막상 오래된 필름 사진이나 손때 묻은 물건들을 마주했을 때 오히려 그 '결함'들이 눈에 확 들어오는 거지.
    그 필름 특유의 미세한 얼룩, 손글씨 특유의 떨림, 가구 모서리에서 느껴지는 세월의 닳음 같은 것들이 말이야.

    이런 것들은 일종의 '불완전한 흔적'들이거든.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 불완전한 흔적들이야말로 그 사물이나 경험에 생명을 불어넣는 가장 강력한 서사(Narrative)가 되는 것 같아.

    완벽하다는 건 마치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오히려 재미가 반감되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거든.

    결국 우리가 '비정형성'에서 재미를 느끼는 건, 그 비정형성이 우리에게 '과정'을 보여주기 때문 아닐까 싶어.
    완벽하게 매끈하게 포장된 결과물은 그 과정이 생략된 것 같아서, 우리는 그 안에 숨겨진 노력이나 시행착오 같은 '인간적인 리듬'을 읽어낼 수가 없어.

    마치 잘 짜인 알고리즘처럼 돌아가는 시스템은 예측 가능하기만 하잖아.
    그런데 말이야, 살짝 삐뚤어진 수작업 도자기 같은 걸 보면, '아, 이 사람은 여기서 살짝 힘을 뺐구나', '여기서는 이 정도의 비대칭을 의도했구나' 같은 해석의 여지가 생겨.

    이 해석의 여지, 즉 '관찰할 수 있는 지점' 자체가 우리 뇌에게는 엄청난 놀이터가 되는 거지.

    우리는 완벽함에서 오는 '확신'보다는, 불완전함에서 오는 '가능성'에 더 큰 매력을 느끼는 것 같아.

    어떤 취미생활을 할 때도 그래.
    정해진 매뉴얼대로만 따라 하는 것보다, 매뉴얼을 살짝 벗어나서 '나만의 방식'으로 엉뚱하게 시도했을 때 얻는 그 엉뚱한 결과물에서 더 큰 성취감이나 재미를 느끼는 것처럼 말이야.

    완벽을 추구하는 과정 자체가 목적이 되는 순간, 우리는 그 과정 속의 우연과 틈새에서 진짜 삶의 재미를 발견하게 되는 것 같아.
    완벽함이 주는 안정감보다는, 불완전함이 품고 있는 '이야기의 여지'가 우리에게 더 큰 흥미와 깊은 관찰의 재미를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