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기술 트렌드를 관통하는 하나의 흐름이 눈에 띕니다.
바로 '기록'의 방식이 점점 더 은밀하고, '업무'의 경계가 점점 더 흐릿해지는 현상이죠.
예전에는 웨어러블 기기들이 손목이나 귀 같은 비교적 명확한 형태(form factor)에 머물렀습니다.
마치 우리가 '이건 시계를 차는 곳', '이건 이어폰을 꽂는 곳'처럼, 기기가 있어야 할 자리가 정해져 있던 느낌이랄까요.
하지만 이제는 그 경계가 무너지면서, 핀이나 목걸이 같은, 마치 '존재하지 않는 듯한' 형태까지 시도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도 이런 시도는 있었지만, 뭔가 '결정적인 한 방'이 없었는지 시장의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죠.
그런데 이번에 등장한 제품들은 이 '기록'이라는 행위 자체를 AI와 결합시켜서, 마치 우리의 사적인 독백이나 회의 내용을 '자동으로 정리해주는 비서'처럼 포장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결국 '라이프로깅(lifelogging)'이라는 거대한 흐름의 연장선상에 놓여있습니다.
즉,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순간, 말하고 생각하는 모든 과정을 데이터로 남기겠다는 거대한 욕망이 기술로 구현된 셈이죠.
문제는 이 '기록'이라는 행위가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서, 우리가 이 기술의 실질적인 효용성이나, 혹은 이 기술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기록의 의무감' 같은 건 깊이 생각하지 않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마치 이 장치가 우리 삶의 빈틈을 메워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거죠.
이런 제품들이 내세우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바로 'AI'입니다.
단순히 녹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대규모 언어 모델(LLM)을 기반으로 사용자가 쏟아내는 방대하고 비체계적인 말의 덩어리 속에서 '핵심'을 뽑아낸다고 홍보합니다.
"전문적인 업무 환경을 재편한다" 같은 문구들이 쉴 새 없이 쏟아지는데, 솔직히 말해서 이 정도의 수사학적 과장은 이제 너무 익숙해져서 오히려 피로감이 느껴집니다.
결국 이 장치가 하는 일은, 우리가 무심코 뱉어낸 수많은 말들을 '검색 가능하고, 정리된 텍스트'라는 형태로 변환해주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정리'라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상품이 되어버렸다는 점이에요.
녹음 자체는 누구나 할 수 있는데, 그 녹음물을 '가치 있는 데이터'로 만들어주려면 매달 구독료를 내야 하는 구조가 생기는 거죠.
마치 우리의 생각의 파편들까지도 '구독 기반 서비스'의 영역으로 편입시키려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이 모든 것이 아직 '실제 출시 전'의 이야기로 포장되어 있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결국 가장 큰 장애물은 '사용자가 이 기술을 정말 필요로 하느냐'의 심리적 장벽을 넘는 것이거든요.
결국 이 모든 복잡한 기술적 포장지 안에는, '당신의 기억을 가장 편리하게 보관하고 싶다'는 아주 원초적이고, 어쩌면 조금은 게으른 인간의 욕망이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기술은 우리의 가장 사적인 순간마저도 '최적화되어야 할 업무 흐름'으로 재정의하려는 경향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