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면, 저도 한때는 '최신 기술'이라는 단어에 완전히 매료되어 살았던 사람이에요.
랩톱이 얇아지면 무조건 사야 할 것 같았고, 마우스 센서가 1%라도 좋아지면 '이건 무조건 업그레이드해야 해'라는 강박에 시달렸거든요.
다들 효율성, 최적화, 초경량화의 끝판왕을 쫓아가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요.
제 책상 위 주변기기들도 마찬가지였어요.
매끈하고, 어디든 섞여도 티 안 나게, 최대한 미니멀하게, 그리고 무엇보다 '빠르게' 작동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했죠.
손목에 무리가 가지 않게 설계된 초경량 마우스, 별도의 버튼이나 튀는 디자인 요소가 없는 무광택 키보드… 마치 제가 너무 '지적인' 사람인 척 연기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한 허전함이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너무 매끄럽다 보다는, 뭔가 '질감'이 부족하다는 느낌?
마치 너무 완벽하게 포장된 선물 상자만 계속 열어보는 기분이랄까.
모든 것이 너무 빠르고, 너무 논리적이라서, 제 감각의 어느 부분이 자꾸만 텅 비어버리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어요.
요즘 들어 제가 무의식적으로 끌리는 것들은 오히려 '과정'이 느껴지는 것들이더라고요.
예를 들어, 키보드 이야기로 치자면, 아무리 아무리 최신 기계식 키보드가 나와도, 저는 결국 '도각거리는' 소리나, 키를 누를 때 느껴지는 약간의 저항감 같은 물리적인 피드백에 더 마음이 끌려요.
그 소리, 그 '딸깍'거리는 감각이요.
이젠 속도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키를 누르는 행위 자체에서 오는 일종의 리듬이나 의식 같은 게 필요한 것 같아요.
예전에는 '최적의 DPI'를 찾는 데 몰두했다면, 지금은 오히려 '적당히 무거운' 질감의 펜을 만지작거리거나, 버튼을 누를 때 살짝 걸리는 듯한 아날로그적인 느낌에 위안을 얻는 거죠.
마치 기술의 발전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일부러 '잠시 멈춤' 버튼을 누르고 싶은 건가 싶기도 해요.
이 '느림의 질감'이라는 게, 어쩌면 우리가 너무 많은 정보를 너무 빠른 속도로 처리하느라 잃어버린, 인간적인 '사유의 여백'을 기술로 채우고 싶은 일종의 저항처럼 느껴지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성능 수치표를 보기보다, 실제로 손에 쥐었을 때의 무게감이나, 사용했을 때의 기계적인 '감성' 같은 것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있는 것 같아요.
기술의 발전 속에서 오히려 느리고 감각적인 '물리적 경험'을 통해 정신적인 균형을 찾으려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