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너무 '기록하는 삶'에 지쳐서, 일부러 백지 상태로 살아보려고요.
요즘 들어 부쩍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우리는 너무나도 기록하는 세대에 살고 있다는 거요.
아침에 일어나서 마신 커피의 라떼 아트까지, 오늘 점심으로 먹은 식당의 분위기, 심지어 친구와 나눈 사소한 대화 속에서 받은 감정의 파동까지, 무언가 '남겨야 할 것 같은' 압박감에 시달리는 기분이에요.
사진첩은 끝없이 차오르고, 메모 앱은 오늘 할 일 리스트로 가득 차서, 마치 내 인생 자체가 끊임없이 편집되어야 하는 콘텐츠처럼 느껴질 때가 많아요.
이게 나만의 일상 기록물이라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그 기록들이 나 자신을 돌아보는 창문이라기보다는,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나의 포트폴리오'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의도적으로 '아무것도 기록하지 않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노력 중이에요.
사진을 찍지 않고, 그 순간의 빛의 각도나 냄새 같은 감각적인 정보들을 텍스트로 정리하려 애쓰지도 않으려고요.
처음엔 어색해서, 뭔가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 것 같은 불안감이 몰려오기도 했어요.
‘이건 꼭 남겨야 하는데…’ 하는 강박이랄까.
하지만 며칠 지나니 신기하게도, 그 빈 공간들이 오히려 마음을 비우는 역할을 하더라고요.
가장 크게 달라진 건, '지금 이 순간'에 대한 몰입도가 높아졌다는 거예요.
예전 같으면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도, 옆 테이블 사람들의 옷 색깔이나 저 창가에 드리운 햇살의 움직임을 사진으로 찍을 각도를 재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이제는 그냥 그 자리에 머무르는 거예요.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거나, 책을 읽다가 문장 하나에 깊이 빠져들 때, 그저 눈으로만 받아들이는 거죠.
주변의 소음이나 사람들의 움직임이 마치 필터를 거치지 않은 원본 영상처럼 생생하게 느껴져요.
어쩌면 우리가 디지털 기기라는 매개체를 통해 세상을 너무 많이 걸러보고, 너무 많이 '정리'하려다 보니, 본래의 생생한 감각들을 잃어버린 건 아닐까 싶어요.
디지털 기록은 정말 편리하지만, 그 편리함의 이면에는 '완벽하게 포착해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이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폰을 가방 깊숙한 곳에 넣어두고, 그저 오감으로만 세상을 경험하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이게 나에게는 일종의 일탈이자, 재충전 시간이 되고 있답니다.
가장 소중한 기록은 렌즈가 아닌, 오롯이 내 기억 속에 남는 순간들인 것 같아요.
디지털 기록의 홍수 속에서 잠시 멈춰, 오롯이 '지금 여기'의 감각에 집중하는 것이 요즘 나에게 가장 필요한 연습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