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디지털 기록, 예전 같지 않지 않나요?**
요즘 들어 문득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우리가 무언가를 기록하는 목적 자체가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건 아닐까, 하고요.
예전에는 ‘기록’이라는 단어 자체가 일종의 ‘정리’ 작업과 동의어였잖아요.
마치 일기장을 빽빽하게 채우는 것처럼, 그날의 사건들을 시간 순서대로 꼼꼼하게 정리하고, 나중에 돌아봤을 때 ‘내가 그때 이런 일을 겪었구나’ 하고 사실 관계를 검토하는 데 목적이 있었죠.
그래서 글도 장황하게 쓰고, 사진도 각도별로 여러 장 찍어서 ‘증거 자료’처럼 모아두는 경향이 강했어요.
그런데 요즘 들어 보면, 그게 점점 힘들어지거나, 혹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아요.
마치 중요한 건 ‘무엇을 했는지’의 목록화가 아니라, ‘어떤 기분이었는지’의 잔향을 남기는 일처럼 느껴진달까요.
그래서 요즘의 디지털 기록은 ‘정리’라기보다는 ‘재현(再現)’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아요.
제가 요즘 사진을 정리할 때도, 단순히 날짜별로 묶거나 주제별로 분류하기보다는, 특정 분위기나 색감, 혹은 그 순간의 감정 상태를 기준으로 사진들을 묶어보게 돼요.
예를 들어, '비 오는 날 오후의 우울함' 같은 테마를 잡고, 그 느낌에 맞는 사진들을 아무렇게나 툭 던져 놓는 '사진 덤프(photo dump)' 같은 방식이 대표적인 예시죠.
이런 건 일종의 '감성적 조각 모음' 같아요.
사진 한 장 한 장이 독립적인 사실이라기보다는, 그 모든 조각들이 모여서 마치 짧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 당시의 공기(Atmosphere) 자체를 다시 한번 체험하게 해주려는 시도에 가깝거든요.
그래서 캡션도 길고 구체적인 설명보다는, 그때 느꼈던 단 하나의 키워드나 짧은 문장으로 그 분위기를 응축하는 경향이 짙어진 것 같아요.
이런 과정 속에서 우리는 의도치 않게 ‘나만의 미니 재현 장치’를 만들고 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해요.
우리는 사실 그 순간을 '정리'하려 하기보다, 그 순간의 가장 아름답거나, 가장 강렬했던 감정의 파동을 포착해서, 나중에 내가 언제든 버튼 하나로 다시 재생할 수 있는 '감성적 아카이브'를 만들고 있는 거죠.
물론 이것이 꼭 완벽하거나 진실만을 담고 있는 건 아닐 수도 있고요.
어쩌면 가장 완벽하게 포장된 '나의 이상화된 자아상'을 재현하는 과정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 과정 자체가 주는 만족감, 즉 '이걸 다시 꺼내 볼 수 있다'는 일종의 시간 여행 같은 느낌이 너무나 중독적이라, 우리는 자발적으로 이 '재현의 기록'을 계속 쌓아두게 되는 것 같아요.
요즘의 디지털 기록은 사실 사건을 정리하기보다, 그 순간의 감성적 분위기를 영원히 되감기 할 '재현 가능한 원본 영상'을 만드는 과정인 것 같다.